마음에 수많은 발자국이 찍힌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상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육신의 상처는 아물고 치료되지만 영적인 상처, 마음의 상처는 영혼을 병들게 하고 메마르게 합니다. 그 곪은 상처 위에 딱딱한 딱지가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씨앗이 그 상처를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해롭게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의 마음을 짓밟고 내 삶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내 삶에 생긴 이러저러한 어려움과 잘못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내게 남긴 상처 때문이고 내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때로 이런 사람들은 술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만남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찾고는 ‘분노’하고 ‘원통’하기 때문에 ‘술’ 밖에는 자신의 위로가 없다고 말합니다. 술을 먹고 난 다음 생긴 모든 문제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때로 이런 사람들은 ‘분노’ 자체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항상 화를 내고 소리를 치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상처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고 그 상처로 말미암은 분노가 삶을 콘트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에 C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성격이 정말 급한 분으로 키 높이와 몸 넓이가 비슷하신 분입니다. 가끔 급한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지난 해 한국에 갔을 때 섬기는 교회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그 집사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물어보았더니 교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요즘 출석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용인즉, 그 집사님이 제직회에서 재정이 잘못 사용된 것을 발견하고 발언을 했는데 재정을 잘못 사용한 바로 그 장로님이 무슨 그런 일을 은혜가 되지 않게 끄집어내느냐고 도리어 그 집사님을 몰아세웠다는 것입니다.
성격 대단한 우리의 C 집사님,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제직회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뒤집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이거 도대체 화도 나고 부끄럽고... 딱 미치고 환장할 지경입니다. 왜 또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번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급하고 극단적인 성격 때문에 직장도 여러번 옮겼고 인간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집사님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저 단순한 사람 아닙니까?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넘어갔을텐데 왜 나를 화나게 해서 이런 일까지 벌이게 합니까? 그게 뭐 장롭니까?”
그 집사님은 딱~ 미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도 물론 잘못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문제는 왜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드냐는 것입니다. 자기 성격을 잘 알면서 말입니다.
딱히 말 할이 없었던 저는 원칙적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이.... 집사님, 화해하십시오. 별 큰 문제도 아니구만요. 평소 친하시잖아요. 그렇다고 집사님이 교회를 안가시면 어쩝니까?”
C 집사님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화해요? 절대 못합니다. 사과요? 차라리 나를 죽이십시오. 나보고 그 장로와 화해하라구요? 나보고 용서하라구요? 내가 차라리 교회 안가고 말지요.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요.... 내가 목사님 다른 말씀은 다 들어도 그것만은 죽어도 못합니다.”
여러분! C 집사님의 마음 밭에 찍힌 큼직한 발자국 하나가 보이십니까? 사랑, 용서, 화해, 예배와 같은 복음적 단어들이 전혀 들어갈 수 없도록 단단히 굳어진 마음 한 자리가 보이십니까? 자신이 그 발자국을 찍지 않았다고, 그것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모든 행동을 분노와 피해의식 속에 정당화하고 있는 곧게 뻗은 길가 밭이 보이십니까?
그런 밭이 여러분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숨어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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