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戰鬪) - 성도가 세상과 싸우는 방법 | na kim | 2018-0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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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戰鬪) - 성도가 세상과 싸우는 방법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은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저는 소위 ‘뼁뺑이’를 돌려서 고등학교를 추첨한 결과 설립한지 1년 된 ‘내성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내성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정년을 2-3년 앞두고 계셨습니다. 존함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일제시대 교사가 되셨고, 부산의 명문인 부산고등학교에서 수십년간 영어교사를 하셨습니다. 아침 조례를 일본식 영어를 섞어서 하시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분이 나름대로 부산 지역에서는 꽤 힘을 쓰셨던 관계로 자신이 가르치셨던 제자들 중에서 교사들을 불러 모으고, 또 부산 지역의 교사들 중에서 선별해서 신설 고등학교의 교사진을 꾸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내성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학벌이 꽤 좋았었습니다. 내성고등학교가 위치했던 동상동은 당시에 5일장이 열릴 정도로 꽤 낙후된 지역이었는데, 교장선생님은 그 촌 동네에 위치한 우리 학교를 일류 고등학교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한 시간 일찍 학교를 가서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했고, 전국에서 고등학교 순위를 가리는 시험을 칠 때면 밤 11시까지 완전 타율적인 자율학습을 시켰습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주입받았습니다. 최일랑 선생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영어 선생님이었는데, 지방에 이름 없는 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학교가 워낙 학벌을 강조하다보니 학생들도 선생님들이 어느 대학 출신인지 따졌고, 최일랑 선생님을 은근히 무시했습니다. 당시에 한 학년에 12개 반이 있었고, 6개 반씩 두 영어 선생님이 맡아서 가르치셨습니다. 마침 다른 6개 반은 교장 선생님의 제자이면서 영어 선생님이시던 민성식 선생님이 맡고 계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입시관련 영어 문제집까지 출간하실 정도로 실력이 있었습니다. 최일랑 선생님의 목표는 민성식 선생님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엄청난 양의 과제를 내주고 무조건 암기하게 했습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체벌했습니다. 어쩌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반들이 다른 6개반보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분노의 주먹을 저희들에게 날리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영어 수업은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최일랑 선생님은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늘 다투고 지나치게 경쟁적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웃는 모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2학년이 되었습니다. 최일랑 선생님이 또 저희 반 영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아... 모두가 실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기도문을 영어로 암송하라는 숙제를 주셨습니다. ‘왜 갑자기 주기도문을....?’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엉뚱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이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모두가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은 이차환 선생님이었습니다. 수학선생님이셨고, 목회자를 꿈꾸던 분이었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분이었습니다. 최일랑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그 담임 이차환 선생님 있제...? 실은 내가 마이 싫어했거덩... 사람이 너무 착한기라.... 사람들도 말이야, 다 너그 선생 칭찬만하고 말이야.... 가식적으로 보이는기라. 그래서 내가 일부로 좀 골려주고, 욕도 좀 하고 그랬거덩... 그런데 이 사람이 계속 착한기라... 내가 한번은 물어봤다 아이가... 당신, 말이야... 일부로 그라는기가? 아이모 진짜로 그라는기가....? 그랬더만 너그 선생이 그마... 씨익 웃고 말대... 내 참...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아이가... 우짜모 당신처럼 그래 착하게 살 수 있는대? 그랬더이 너그 선생이 나보고 교회 나가자 카대... 그래서 내가 마, 지난 달부터 교회 댕긴다! 앞으로 너그 선생하고 제일 친한 친구 될끼다!”
“우와~~~!” 우리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최소한 앞으로 주먹으로 맞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그 선생님에게 붙은 별명만 해도 수십 가지였는데 모두 다 나쁜 쪽으로였습니다. ‘독사’나 ‘깡패’니 ‘도사견’이니... 그랬던 선생님이 한 번도 우리를 체벌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늘 대해주시는 천사 같은 이차환 선생님과 제일 친한 친구가 되겠다니까요, 교회까지 나간다니까요.... 최일랑 선생님이 다시 우리들에게 물었습니다. “너그 반에도 교회 나가는 놈들 있나?” 그러자 모두 저를 돌아봤습니다. “응도 점마 목사된다카든대예~~” 최선생님이 저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는 “니 사도신경 한번 외아바라! 나는 그기 잘 안외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손에 든 매로 다른 손 손바닥을 탁탁 치시면서 눈을 감고 저의 암송을 듣고 있던 선생님은 마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음... 좋네... 이응도 임마, 니 똑바로 해라이~~” 제 친구들 앞에 제가 처음 들려준 신앙의 고백은 최일랑 선생님 때문이었고, 이차환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최일랑 선생님의 제일 좋은 친구, 이차환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선생님이 사용하셨던 ‘세상 속에서 성도로 사는 방법’, 그 길이 세상을 이기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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