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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바? 이응도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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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바?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더니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이 어떻더냐?”는 것입니다. 참 막연하고 애매한 질문 아닙니까? 질문을 했던 많은 사람 각자가 다른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대답을 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대답을 할까 생각하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대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그리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에 부산에 오면 꼭 하고 싶은 것 하나가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혹시 광안리에 가 보셨나요?”
“아니요. 아직요. 좀 있다 시간이 나면 가 볼려구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광안리에 트랜스젠더 바가 생겼대요.”
“그래서요.”
“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어디를요?”
“트랜스젠더 바요.”
“아니, 그기를 왜요?”
“재미있잖아요. 정말 하리수처럼 생겼는지, 정말 여자들보다 더 이쁜지 알고 싶어요. 다음에 부산에 오면 돈 모아서 꼭 가볼거예요.”


저는 한국이 어떻더냐는 많은 사람의 질문에 한가지로 대답했습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구분 없이 뒤섞여 가고 있는 중이었다.”라고 말입니다. 낮과 밤이 섞여가고 있었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었고, 선과 악의 구별이 사라지고 있었고, 장년이 할 수 있는 일과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 사이에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가 무너져감을 느낄 수 있었고, 보호되어야 할 가정의 울타리가 느슨해져 있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새로운 질서를 향해서 해체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급속한 변화 속에 있는 한국 사회를 한편으로는 경이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몸의 여러 기관이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잘 감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각 기관이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다른 역할을 침범 한다면 몸의 건강은 지켜질 수 없습니다. 눈의 기능과 손의 기능이 호환되거나 통합될 수 없고 한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기능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건강이 염려되는 사회입니다. 건강한 사회로 변화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지켜져야 할 구별과 원칙과 의미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습니다. 한 사회가 기초해야 할 뼈대로서의 도덕과 원칙이 분절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살고 있는 미국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국 사회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와 건강하게 하는 요소의 구별이 지켜지고 있고, 그것들 사이의 균형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너지고 뒤섞인 후에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질서와 균형이 들어설 것입니다. 새 질서에 대해 염려하는 것은 그것의 도덕성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든든한 복음적인 기초가 한국 사회에 들어서고 그 위에 세워지는 새로운 질서를 소원해 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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