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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십니까? 이응도 목사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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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십니까?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C.C.C.라는 대학생 선교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산 대학교 캠퍼스에는 미리네골이라는 아주 아름답고 예쁜 계곡에 있는데 C.C.C.에서는 매일 아침 수업이 시작하기 전 Q.T.를 그 계곡에서 나누었습니다. 당시 저의 순장은 ‘용덕이 형’이라는 분으로 공대 3학년이었습니다. 그 형은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친형처럼 저와 또 한명의 순원이었던 재형이를 잘 이끌어줬습니다.


1학년 말 저는 사회 정의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각이 날마다 비판적으로 바뀌어가고 잘 받아들이던 용덕이 형의 말도 삐딱하게 되받아치기도 했습니다. 함께 성경 공부를 했던 재형이는 C.C.C.안에서 잘 성장하고 있었지만 저는 교회의 역사성 부재와 대학생 선교 단체의 비겁함을 지적하면서 매번 형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C.C.C. 동기들도 저를 걱정해서 기도 모임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저는 ‘확실한 운동권’이 되기로 결심하고 C.C.C.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용덕이 형을 만났습니다.


용덕이 형은 제가 읽었을 만한 책을 줄줄 읊었습니다.


“니 이런 책… 이런 책… 읽었제? 너그 운동권 선배가 이런 말… 이런 말…하제?”

고개를 끄덕이며 무관심하게 대답하는 제게 용덕이 형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니가 정말 민중을 사랑하나?

니 진짜 민족을 위해 니를 바칠 수 있나?

그런 책 몇 권 읽었다꼬 사랑이 생긴단 말이가?”


형은 성경을 폈습니다.


“니, 성경에서 사랑장이 어디에 있는고 아나?”

“고린도 전서 13장 아임미꺼?”

“그래, 맞다. 우리 마지막으로 그거 함 읽어보자. 니 함 읽고 내 함 읽자.”


우리는 차례로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용덕이 형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 좋다. 인자 사랑이라는 말 대신 ‘예수’라는 말을 넣어서 함 읽어 바라.”


저는 ‘예수는 오래 참고 예수는 온유하며….’라며 천천히 읽었습니다. 딱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러자 용덕이 형은 물었습니다.


“우떻노? 니 동의할 수 있나?”

“예, 동의할 수 있심미더. 그래서 우짜라꼬예?”

“그라모 인자 사랑이라는 말 대신 니 이름을 넣어서 함 읽어 바라. 크게 읽어 바라.”


저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응도는 오래 참고…

응도는 온유하며…

응도는………음…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응도는 자랑하지 아니하며…

응도는 교만하지…아니하…며…….

행님, 나 안읽을람미더.

어색해서 더 이상 몬읽겠심미더.”

“그래, 몬읽을기다. 니 아직 예수님 사랑도 다 모리면서 민중 사랑, 민족 사랑 말하지 마라. 니가 운동권 되는 거 내가 더 이상 몬말리겠다만, 니 잘 기억해라. 예수님 사랑 모리믄 사람 사랑 모린다.”


그게 용덕이 형과 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형은 이후 군대를 갔고 저는 그 말을 들었건 말았건 열심히 운동권 학생으로 남은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이후 형이 제대했다는 이야기, 부산 지역 대표 순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많은 고민과 갈등의 기간을 거쳐서 결국 신학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여러 신학교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끔 용덕이 형 생각이 납니다. 80년대 중반, 한번쯤 시위 대열에 참여하지 않은 대학생이 없던 시절, 운동권 학생으로 대학 생활을 보낸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통해서 제 눈을 넓혀 주셨고 사람에 대한 관점도 많이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에 대한 심플한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용덕이 형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기억합니다. 22살의 푸른 청년, 공과대학 3학년 학생의 음성을 기억합니다. 나이 40이 되고 목회자가 되고 상담을 하면서도 19년 전, 그가 내게 던졌던 메시지를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여전히 사랑에 대해 부족한 사람이고 어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예수님 사랑을 채 모르고 사람 사랑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에 대해 내 삶을 완전히 드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 가슴이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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