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관 그리고 개털 모자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천국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 가장 흔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바로 ‘개털 모자’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천국에 가서 금 면류관이나 은 면류관을 기대했더니 제일 마지막에 있는 개털 모자가 자기 것이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너무 놀라고 분해서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목사님 괴롭히지 않고 성도들을 잘 섬기며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대충 누가 어떻게 만든 이야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들이 교회에서 대하기 어려운 장로님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마음 속에 깊이 담아두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이야기가 통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천국 혹은 상급의 개념이 이 이야기가 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이해할 때 많은 부분 오늘날 우리가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필요했던 모든 것이 만족하게 되는 상태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영광 또한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꾸며진 왕궁을 상상합니다. 상급의 개념은 어떻습니까? 제가 본 어느 부흥사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서 여러 고을을 다스린다는 표현을 빌어와서 성도들에게 나중에 고을을 다스릴 훈련을 시킨다고 “여봐라!”하는 연습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천국의 면류관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신라의 왕들이 썼다는 황금으로 된 왕관입니다. 사진으로 보고 또 경주 박물관에서 봤던 그 왕관이 어린 나이에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면류관은 그 정도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성도와 교회가 우리 주님을 만나는 날 받을 면류관은 그런 것일까요?
바울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자신에게 준비된 면류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의 소망, 바울의 기쁨, 바울이 자랑하고 싶은 면류관, 그것은 바로 교회요 성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2:19-20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너희는 우리의 소망, 기쁨, 그리고 자랑하고 싶은 면류관이며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왜 교회와 성도가 바울의 면류관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성도와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고 살만큼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와 교회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자신의 삶을 지불한 것만큼 큰 공로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급은 교회와 성도로부터 말미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복음으로 사람을 섬기며 교회를 섬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헌신하고 투자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며 교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져서 이방 교회를 위해 사용했던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며 삶을 변화시켰던 교회와 성도의 면류관을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과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과 영광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으로부터 영광을 얻고 싶습니까?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인 우리의 인생을 ‘사람과 교회’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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