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덕 간사의 찬양 간증 집회를 마치고
어릴 적, 아버님이 목회를 하시던 교회당 화단에는 여러 꽃들이 만발했었습니다. 화단 가꾸는 일을 즐기셨던 할머니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장미며 채송화, 동백이며 국화까지 계절마다 새로운 꽃들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화단 앞부분에 봉숭아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할머니는 봉숭아꽃이 피면 여동생의 손톱을 물들여 주셨습니다. 꽃잎을 따서 모으고 깨끗한 돌로 찧어서 즙을 만들고 그것을 손톱에 올려서 묶어두면 빨갛고 예쁜 손톱이 되었습니다.
봉숭아로 손톱을 가꾸는 일은 간단한 원리가 있습니다. 꽃잎이 아무리 붉고 아름다워도 그것을 그대로 올려 놓아서는 안됩니다. 꽃잎은 스스로 손톱에 스며들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꽃잎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에도 손톱을 물들이지 못합니다. 봉숭아 꽃잎이 손톱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으깨지고 부숴져야 합니다. 꽃잎의 모습을 잃었을 때 오히려 스며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꽃잎으로 남아서는 할 수 없는 일, 부숴지고 으깨져서 소녀의 손톱에 스며들고, 겨울 첫눈 오기까지 고운 향기로 피어있는 것입니다.
최용덕 간사의 찬양 간증 집회를 마치면서 문득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동생의 곱게 물든 빨간 손톱 생각도 났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이 많은 사람의 삶에 고운 손톱으로 물들어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용덕 간사의 간증 집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교회에 있었던 집회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집회는 간증집회였으므로 성도들의 마음과 삶에 남은 여운을 살피면 쉽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가 마치 손톱 위에 올려진 봉숭아 즙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에 잘 스며들었습니다. 삶에 시리고 아픈 첫눈이 또 다가올 때까지 성도들의 마음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 손톱이 자라고 사라져도 마음 위에 은혜와 긍휼로 붉게 물든 또 다른 손톱이 생겨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간증 집회라는 것이 한 사람의 성공을 자랑하고 그와 같은 성공을 갈망하는 집회가 되기 쉽습니다. “내가 이렇게 믿어서 이렇게 성공하고 복을 받았으니 당신들도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라는 류의 간증 집회는 제가 목회자로 섬기는 한 저희 교회에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성공이 우리 믿음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 또한 믿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최용덕 간사의 간증은 처절한 자기 반성,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실패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해도 결국 다시 실패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도 결국 다시 넘어지는 삶, 그래서 더 낮아지고 더 아파하고 더 주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한번 은혜를 깨닫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갈등과 시험이 없는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그의 삶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스며들 수 있는 힘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가 힘이 있고 그의 눈물이 가치 있는 것은 그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발버둥치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름다운 꽃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으깨지고 부숴진 심령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업적과 열매가 아닌 처참하게 무너진 한 연약한 인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목회자로서 섬기는 교회와 성도가 함께 은혜를 나누게 되어서 좋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아름다워서 좋습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이해하시고 연약함을 만지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최용덕 간사의 집회는 제 마음의 손톱 위에 잘 으깨진 즙으로 놓여 있고, 천천히 곱고 붉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그 빛깔 더욱 곱고 그 은혜 더욱 좋습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 http://chodaepa.onm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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