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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그리고 아버지 이응도 목사 201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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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그리고 아버지

조금 전에 치과 치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유난히 충치가 많아서 요즘 꽤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던 중에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습니다. 마취 때문에 아픈 줄을 몰랐습니다. 엷게 피가 배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도 입 안이 얼얼합니다. 여전히 혀에 감각이 둔하고, 통증도 둔합니다. 발음이 새서 전화 통화도 힘들었습니다.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겠지요.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낙엽 진 가을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소천하셨습니다. 75년,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사셨습니다. 약 45년 목회를 하셨고, 5년을 꼬박 병상에 계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하셔서 가족과의 이별을 준비하셨는데,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제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한 마음이었음을 압니다.

갑자기 소식을 접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하루 종일 교회 사무실에 앉아서 안절부절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었고, 이곳 미국에 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의 마음에 마취가 필요했습니다.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동료 목사님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아버지의 천국길을 환송하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마음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중에 “응도야, 울지 마라. 우리가 믿는 대로 아버지는 천국에 계시고, 이제 비로소 너를 보고 너와 함께 할 수 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는 말씀을 하실 때.... 오히려 참았던 눈물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제게 참 아픕니다. 무어라 다른 표현을 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로 한 평생 질주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목사로 사는 제 삶의 이정표이면서 한편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 할 거울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지난 5년 간 병상에 계실 때에도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미쳐 손 잡아드릴 수도 없이 떠나가신, 아버지는 다시 만날 때까지 저의 남은 평생에 여전히 아픈 이름일 것입니다.

소천하신 다음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성도들을 만나는 일이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 하고, 말씀을 전해야 하고, 또 교회의 사랑과 배려로 천국 환송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자꾸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탓일 겝니다. 잠시 마취가 필요했습니다. 성도들과 눈 맞추지 않고, 말을 섞지 않기로 했습니다. 빨리 시간이 지나고, 모든 과정들이 흘러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예배도, 그렇게 천국 환송 예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인사도 흘러갔습니다.

글을 쓰는 중에 조금씩 마취가 풀리고 있습니다. 치료 받은 이가 아프고, 깨물었던 혀가 아리기 시작합니다. 한 두 시간 더 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통은 조금 더 깊어질 것이고, 고통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맛도 느낄 것이고, 말도 제대로 하게 되겠지요.

마취가 조금씩 풀리고 있습니다. 묶어 두었던 마음이 풀리고 있습니다. 문득 눈물이 흐르고, 문득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천진하게 뛰어노는 제 아이들을 응시하고 있고, 아내의 손을 잡게 되고, 사람 만나는 일은 여전히 힘이 듭니다. 뿌리를 알 수 없는 죄책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더 쓰리고 아파옵니다. 어디를 만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 수 있습니다. 마취도, 통증도 치과 치료의 한 과정이듯 제 마음의 이런 고통도 하나님께서 저를 만지시는 과정일 것입니다. 아무리 다잡아도 여전히 아프고 쓰린 이 마음, 제가 경험하고 알아야 할 인생일 것입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야 말할 수 있고, 맛 볼 수 있고, 제대로 씹을 수 있는 것처럼, 고통도 슬픔도 제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달고 고소한 맛만 있는 것이 아니듯, 행복하고 좋은 기억만이 제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쓰고 신고 매운 맛과 어울려 좋은 음식이 되듯, 하나님이 만드시는 제 인생은 또 그렇게 어울려 질 것입니다.

마취가 풀리고 있습니다. 점점 고통을 진하게 느낍니다. 이렇게 치료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http://chodaepa.onm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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