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내 입을 씻었습니다.”
지금 저는 저희 교회가 계속하고 있는 북미 인디언 원주민 교회에 대한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아리조나 사막 가운데 있는 원주민 교회당에서 숙식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저희 교회 단기 선교팀에게도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20여명의 선교팀 중에서 반 이상이 Youth Group이었는데, 매년마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번 단기 선교 기간 중에 만난 한 인디언 자매의 이야기가 제 마음을 계속 짓누릅니다. 벌써 나이 60을 바라보는 S자매는 남편과 더불어 그 교회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고, 자신은 유년 주일학교의 부장일 뿐 아니라 교회의 각종 행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일찍 교육에 눈을 뜬 부모님 덕분에 대학 교육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로 진출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여전히 인디언 보호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때때로 보이는 원망과 분노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얼마 전에 인디언 선교를 위한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원주민 선교에 관심이 있거나 관여하고 있는 많은 교회와 선교사들이 모였습니다. S자매도 원주민 교회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한 미국인 선교사가 나와서 그동안 자신들의 선교의 실패를 고백했습니다. 정복자요 탈취자로서의 얼굴로 인디언 선교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완벽한 인디언의 얼굴을 하고 원주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현지에 있는 각 교회가 지도자를 발굴하고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주민 교회에서 그 교회를 목회적으로 섬기고 성장시켜나갈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옳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S자매 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이 났습니다. 중학교 시절,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진학한 그녀는 철저하게 영어만 쓰도록 교육 받았습니다. 어쩌다가 실수로 원주민의 언어를 사용하다가 발각이 되면 선생님은 그녀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습니다. 사용하지 말아야 할 언어를 사용했으므로 입을 씻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입을 씻고 또 씻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들의 말을 마음에 묻었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선교사의 발표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때 S자매가 손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단상으로 걸어간 그녀는 눈물을 삼키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부족의 얼굴과 말로 선교를 할 지도자가 필요하다구요? 우리들의 마음과 입술에서 우리들의 언어를 씻어버렸던 당신들이 이제 우리들에게 우리 부족을 선교하라구요? 당신들이 우리에게 강요했던 영어가 아닌 당신들이 씻어냈던 언어로 전도를 하라구요? 당신들은 얼마나 많은 인디언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입을 씻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당신들에게 땅과 역사를 빼앗기고, 언어마저 빼앗긴 채 ‘보호구역’이라는 허울 좋은 지역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분노를 아십니까? 당신들이 그동안 인디언 선교를 실패한 이유가 다른 얼굴색과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당신들의 선교의 실패는 얼굴색과 언어가 아닌 반성이 없는 교만한 마음, 당신들이 결정하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오만한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 부족을 선교하고 싶다면 먼저 우리들에게 그 답을 물어보십시오. 왜 우리가 복음을 들고 우리를 찾아오는 당신들을 거부하고 적대하는지를 먼저 이해하십시오. 복음이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당신들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회의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S자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입에서 씻어냈던 언어로 다시 선교를 하라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단기 선교팀은 참 좋은 고민과 기도의 제목을 안고 교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인디언 원주민 선교의 가장 좋은 길일까요? 저는 가장 좋은 길은 다양한 관점에 따라 다양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디언 원주민 선교에 있어서 선택하지 말아야 할 나쁜 길들에 대해서는 이번 선교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보다 신중하고 보다 겸손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더 많이 가졌다고, 우리가 더 크다고, 우리가 더 앞서간다고 자랑하는 순간 선교는 곧 실패로 방향을 틀게 되고, 교회와 교회는 관계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더 낮아지고 더 헌신해야 합니다.
S자매의 눈에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을 기억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그 눈물에 반짝였습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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