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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당하는 기도’ 미디어선교팀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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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14/544531

 

순교 당하는 기도

 

어느 원로 목사님이 쓴 칼럼에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내용이 있더군요. 뉴욕 지역에 집회를 하던 중에 담임 목사님과 함께 한국 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자 종업원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목사님, 이리 오시지요...” “목사님, 뭐 드리겠습니까?” “목사님, 오늘 맛있는 요리는요...” 종업원들은 극진하게 함께 간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 이 식당 주인이 이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종업원들이 이 목사님에게 유달리 친절할까 궁금하던 차에 직접 한 종업원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종업원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식당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팁에 민감해진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팁을 많이 주는 손님에게 친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여러 사람이 함께 와서 대표기도를 하고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는 손님들은 대부분 팁이 아주 박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그 자리에 있는 목사님은 잘 모시지만 서빙을 하는 종업원들은 쉽게 무시하거나 팁을 짜게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종업원들은 교회 손님들, 특히 목사님들과 함께 오는 손님들에게는 서로 미루고 잘 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간 그 목사님은 항상 종업원들의 팁을 따로 계산하는 분이었습니다. 자신이 식사 대접을 받는 자리여서 굳이 계산을 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음식을 서빙해준 종업원들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많지는 않지만 꼭 팁을 따로 놓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 종업원은 설명을 마치고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나도 시간이 좀 있으면 저런 목사님이 있는 교회 가고 싶어요.”

 

그 목사님은 칼럼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나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기도가 어떤 공식적인 모임이나 예배의 끝마침으로 형식에 불과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습관화된 것이라면 주님께서 의도하신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께서 이 기도를 가르치신 것은 이 기도의 정신대로 기도하고 이 기도의 내용대로 살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첫 부분에서 가르쳐 주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는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략) 이 기도의 대목에서 우리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________________ 정도는 되야지...”라는 말에 여러분은 어떤 말을 넣고 싶으십니까? 그 목사님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나도 저 사람이 믿는 예수 믿고 싶고, 저 사람이 다니는 교회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주기도문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주기도문을 자신의 삶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기준에 적합하십니까?

 

요즘 인터넷이나 카톡으로 좋은 글들을 서로 퍼 나르는 경우가 많죠? 가끔씩 근거 없는 글들도 있기는 하지만 주기도문에 관한 좋은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하지 말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 ‘아버지하지 말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하지 말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 ‘악에서 구하소서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 ‘아멘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주기도문에 대한 이러한 반성은 종교 개혁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주기도문이야 말로 최대의 순교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기도문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자기 반성의 고백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소원과 삶의 변화를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면 이렇게 기도해야 하고, 이 기도에 적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기도를 가르치신 주님의 목적입니다.

 

매일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묵상하며 기도하는 우리들, 이 기도가 삶으로 드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가정과 교회가 변할 것입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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