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비극’ | na kim | 2013-1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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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비극’
1990년대 후반부터 유럽의 여러 오케스트라에 베네수엘라 출신의 단원들이 크게 늘어납니다. 2008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LA 필하모니의 음악 감독으로 당시 28세에 불과했던 구스타보 두다멜이라는 신예가 지명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더블 베이스 주자로 큰 화제가 된 에딕슨 루이스는 17세에 불과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엘 시스테마’(El Sistema/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라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 출신들입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라는 청년은 36살이던 1975년 유학을 마치고 고국 베네수엘라로 돌아옵니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고, 고국에 돌아와서 무너진 경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세계 2위의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치적인 혼란과 낮은 교육 수준으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마약과 범죄에 연루되는 일이 많았고, 미래와 꿈을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레우는 이러한 현실에 깊은 아픔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조국의 미래인 아이들이 바르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는 수도 카르카스 한 빈민가의 차고에 청소년 11명을 모았습니다. 그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주고 관현악 합주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곧 20명이 되고 40명이 되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아브레우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혼자서 몰려드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ystema)라는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 교육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엘 시스테마를 찾은 아이들은 클래식 음악 교육을 통해 건강한 정서와 품성을 키우며, 협동과 상호 이해를 배웠습니다. 사회적 질서와 공적 책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었고, 오늘날 베네수엘라를 지탱하는 수많은 인재들로 성장했습니다.
2010년 10월, 아브레우 박사는 한국을 방문하고 ‘서울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당시 71세였습니다. 여전히 엘 시스테마에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베네수엘라에서만 37만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엘 시스테마’의 혜택을 받고 있었고, 이들을 가르치는데 6000명 이상의 음악 교사들이 땀 흘리고 있었습니다. 중남미, 스페인, 포르투갈에 이르기까지 라틴권 전체의 사회개혁 프로그램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한 나라와 한 대륙을 넘어 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2010년 Ted Prize Award라는 상을 수상하면서 자신이 전공했던 경제학을 버리고 음악을 통해 사회 계몽 운동에 나선 이유를 아더 테레사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가장 무서운 비극은 빵과 잠자리의 부족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가치와 정체성의 결여에 있다.”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과 이웃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빵이 아니었습니다. 집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조국 베네수엘라가 회복해야 하는 것, 자신의 사랑하는 조국이 어려운 상황 속에 탈취 당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참된 가치’였습니다. 가난해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몸이 불편해도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참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그 삶은 잠시 불었다가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한 길이 되는 삶을 살지만, 어떤 사람은 길가에 뿌연 먼지와도 같은 삶을 삽니다. 아브레우는 먼지처럼 살아갈 조국의 아이들을 보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그들을 품었습니다. 아이들을 그의 삶을 헌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습니다.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오늘날 아름답게 꽃 피고 열매 맺고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말했던 가장 무서운 비극, ‘자기 정체성의 결여’는 그녀가 헌신했던 인도에만 있었던 현상일까요? 아브레우가 섬겼던 베네수엘라의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문제는 오늘날 우리 한인 이민 사회의 문제이며 우리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자녀들에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이끌고 있는 가치는 무엇이며, 왜 그것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What for and Why?”라는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을 주실 수 있습니까?
가장 무서운 비극,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 대답하지 못한 채 한 평생을 보내는 슬픈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내 삶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며 내 시간은 가장 빛나는 보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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