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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적 na kim 201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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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적

초등학교 1학년 때 저희 반에는 지성호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키가 꽤 컸었는데도 지성호는 저보다 한 뼘이나 더 컸고, 나이도 한 살 많았습니다. 얼굴도 시커먼 것이 아무도 감히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선생님들이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항상 그 친구의 이미지를 떠올렸었습니다. 당시에 1학년들이 쓰던 교실은 30-40년 된 목조에 마루로 된 건물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남자 아이들이 복도에 다 쏟아져 나와서 전쟁놀이를 했습니다. 빗자루나 마대 걸레 자루를 들고 와~~~~ 하고 몰려갔다가 또 와~~ 하고 도망쳐 오는 놀이였습니다. 특별히 진짜 싸움이나 사고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각 반별로 기싸움을 하는 나름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복도 끝에 있던 우리 반이 밀릴 때면 지성호가 나타납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중간에 떡 버티고 서면.... 아무도 덤비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반은 기세가 높아져서 와~~~하고 쳐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지성호는 2학년 때 가까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5학년 때 지성호가 우리 반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다시 전학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성호는 분명 지성호인데, 뭐가 좀 이상했습니다. 애가 자라지를 않은 것입니다. 저는 꾸준히게 자라서 여전히 반에서 1,2 등을 다투는 덩치였는데, 지성호는 중간 정도의 키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성호는 지성호 아니겠습니까? 1학년 때 가졌던 존경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지내던 어느 날, 친구들과 다 같이 축구를 하다가 다툼이 생겼습니다. 주먹 싸움을 할 수도 있는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지성호가 있었습니다. 상황이 지성호에게 좀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던 순간, 지성호가 갑자기 잉잉잉~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너무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천하의 지성호가.... 울어....? 오호... 이것봐라...’

저는 그날부터 지성호를 이겨먹었습니다. 제가 당당하게 나가자 지성호는 당연히 제 앞에 꼬리를 내렸습니다. 우리 둘은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는데, 1학년 때는 지성호가 저를 무조건 이겼고, 5학년 때는 제가 지성호를 무조건 이겼습니다. 남자 아이들끼리 힘의 서열이 중요하던 시기에 지성호와 저의 서열을 결정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적극적인 사고 방식의 능력(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저술한 노만 빈센트 필 목사는 생각의 힘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무실에는 현판 하나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태도가 사실보다 훨씬 중요하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 글귀는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사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아무래도 난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거야. 사실은 사실을 뿐이라고. 그게 다야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그러나 해결하는 방법이 있어. 문제를 다각도로 면밀히 분석하고 정면으로 돌파하는거야. 문제는 해결되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나는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부정적인 사람은 문제에 짓눌린다. 반면 긍정적인 사람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문제 자체가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결과를 결정한다.

여러분은 지성호와 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성호와 저는 왜 싸워보지도 않고 이기고 지는 일을 반복했을까요? 대답은 아주 단순합니다.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싸우기 전에 졌기 때문입니다. 해보지 않고 먼저 패배의 태도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진 것이요, 지성호에게 진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있는 두려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등학생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골리앗 앞에 패배를 선택한 사울왕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되기 전의 모세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로 변하기 전의 제자들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알기는 아는데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연약한 성도들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대로, 말씀대로, 사명을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살 수 없다고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우리들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때로 초등학생 수준의 신앙에 우리를 머물러두고 다들 그렇다며, 예수님도 그럴 것이라며 만족하며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토마스 카일라일은 모든 인간의 으뜸되는 과업은 먼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다면 우리 행동은 노예적 특성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경적으로도 옳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짓눌려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거듭 격려하십니다. 두려움, 우리 안에 숨은 내면의 적입니다. 이 강력한 적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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