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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사랑 na kim 20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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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사랑

한 달 쯤 전이었습니다. 주일 저녁에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으로 가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문을 열자 제 나이 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누구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당황하면서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좀 쉴 곳을 찾아다니다가 문이 열려서 들어왔습니다.” 왜 쉴 곳이 필요한지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필라델피아 시내에 사는데, 여기 가까운 Souderton에서 내일 아침 일찍 면접이 있다고 헸습니다. 차가 없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올 수가 없어서 무작정 가까운 지역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렌즈데일 기차역에 내려서 쉴 곳을 찾다가 우리 교회당을 발견했고, 마침 문이 열려 있어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며 신분증을 복사하라고 주려고 했습니다. 그분을 진정시키고 안쪽 교실로 모신 후 잠시 제 사무실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고민이 됐습니다.

 

신앙에도 낭만이 있습니다. 모든 가난한 사람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를 헌신하고 나누는 삶 가장 래디컬한 성도와 교회의 삶일 것입니다. 그것은 옳습니다. 내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내가 믿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에는 현실도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허락을 받지 않고 11시가 넘은 시간에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왔다는 것 - 그 의도와 생각이 의심스럽고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집에 가지 않고 그분을 지키기 위해 교회당에 남아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10년 전, 저희 교회가 Glenside에 있는 미국 교회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던 때였습니다. 어느 주일 새벽, 교회당에 우리 성도들 외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도 그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회당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 1층 친교실 옆 비품이 들어 있는 방문을 열자 남루한 차림의 술 냄새를 풍기는 한 청년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도 놀라고 저도 놀랐습니다. 누구냐? 왜 여기 있느냐? 어떻게 들어왔느냐? 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을 불렀고, 미국 교회에 알렸습니다.

 

다음 날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나서 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교회에 대해 좋을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감사의 표현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자신은 이미 노숙자인 그 청년이 몰래 교회당에서 자고 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아직 교회에 크게 피해 입힌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아니면 그런 청년이 갈 곳이 없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대답에 그 청년을 맞닥뜨렸을 때보다 더 당황했습니다. 딱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 사무실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려왔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것과 덮을 침낭을 그분에게 줬습니다. 히터를 틀어서 따뜻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리고 잘 쉬고 내일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잠시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꾸 무엇인가 뒤통수를 잡아 댕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너무 일찍 오면 눈치가 보일까봐....적당히 일찍 교회당에 왔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묵었던 곳을 잘 정리하고 이미 가고 없었습니다. 그분이 고마웠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분이 아마 사고를 치지 않고 가주셔서 고마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고마웠던 것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에게 질문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좋은 영적인 경험을 하게 한 것입니다. 아침 일찍 교회당으로 오는 길에 참 많은 질문과 상상을 했습니다. 만일 교회당에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목회자로서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지...? 답은 오는 길에 답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였습니다.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감당하면 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발생했으면 책임을 지면됩니다.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일, 아무런 위험과 수고 없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모든 사랑은 위험합니다. 모든 사랑은 실패와 거절과 아픔과 상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우십니까? 사랑에 실패할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을 움켜쥐시겠습니까? 사랑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룻 밤 숙소를 빌려주는 일에도 사랑에는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랑과 선행의 실패, 호의의 은혜에 대한 악의적인 거절, 나의 힘든 수고를 값싼 것으로 바꿔버리는 몰염치함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사랑했는데 사람을 잃을 수 있고, 헌신했는데 원망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하기를 포기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에 대해 사탄이 늘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승리는 우리가 믿음과 영생에 관심을 가지되 레위인으로, 제사장으로, 젊은 율법사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여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아니라 형식적 종교인으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리는 눈과 근심 가득한 마음으로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 사도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묵상합니다. 두려움 없는 사랑,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1 4:18,21)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가정 상담 연구원

215-869-5703, edwinl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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