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성도 보통씨의 야외예배 | na kim | 2018-09-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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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는 1년에 한번은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가서 조금은 유난스럽게 예배를 드립니다. 마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공원이 우리 교회당인 것처럼 꾸미고 준비합니다. 공원에 있는 다른 분들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음향을 준비합니다. 성가대도 그대로, 예배 시간도 그대로, 순서도 그대로 합니다. 마침 올해 저희 교회가 야외예배로 드리는 이번 주일은 한 달에 한번 성찬식을 하는 주일이어서 성찬도 나누게 됩니다. 즐겁고 편하고 참 좋습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숲에서 부는 바람과 촉촉하게 젖은 잔디까지 모두 예배의 처소가 됩니다. 힘들고 거친 이민의 삶 속에서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배하는 일은 의미 있고 즐겁습니다. 예배가 안식이 되고 회복이 되고 은혜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배당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던 구한말 만주나 연해주의 한인들도, 하와이에 사탕수수를 재배했던 한인들도, 멕시코 등의 남미에 정착했던 한인들도, 미대륙으로 건너와서 봉재공장에서 일했던 한인들도 모두 예배당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예배했고, 서로가 같은 민족임을 확인했고, 자녀들을 교육했고, 그리움과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를 지키는 든든한 방벽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인 교회가 예배의 처소를 가질 수 있고, 한국어로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와 교회당 혹은 예배당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장소가 아닙니다. 건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이며,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신앙을 고백할 때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교회입니다. 십자가의 흔적이 있고, 사랑과 헌신이 있을 때 교회입니다. 용서와 용납이 있을 때 교회입니다. 회개와 회복이 있을 때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눈물로 기도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마음으로 찬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고, 그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교회가 됩니다. 장소와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헌신하며 수고하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장소, 우리는 그 장소를 예배당 혹은 교회당이라 부릅니다. 야외 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야외예배는 소풍이 아닙니다. 짧고 간단하게 예배드리고 바비큐를 하고 게임을 하는 것이 야외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야외예배를 하면서 본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와 같은 순서와 형식을 갖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지은 건물보다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간단해야 할 이유가 없고, 짧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하고 더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다윗이 문득 백향목으로 지은 자신의 집을 보고, 여전히 천막으로 된 하나님의 성소를 보게 됩니다. ‘아... 이럴 수는 없지... 나는 이제 왕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화려한 집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은 저기 광야에서부터 케케묵은 천막에 계시다니....’ 그는 나단 선지자를 부릅니다.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하나님의 처소를 지어야겠다... 나는 이렇게 영광스럽게 사는데 하나님은 저렇게 초라한 곳에 계시게 할 수 없다....” 다윗의 생각과 말은 맞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에서 예배했는데, 그 처소가 너무 초라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성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막에 갇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성전에 거하시고,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고 보호해달라고 말합니다. 맞는 기도일까요? 맞고 또 틀립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거하시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놓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억압하며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지 못하면서 자신들만을 위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그들의 예배를 외면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서로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삶으로 회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존재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고, 우리는 비로소 건물이 아닌 우리의 마음과 삶으로, 장소가 아닌 우리의 열린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들에서.... 성도들이 모인 모든 곳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성도 보통씨의 야외예배는 그래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건물과 장소가 아닌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서로를 향한 헌신 속에서 예배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천지만물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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