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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언덕 위에서 na kim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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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언덕 위에서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손주들을 위해 해 주신 일이 참 많습니다. 어머님이 무남독녀 외동 딸이셔서 저희들 손주들을 많이 위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제게 주신 좋은 선물 중에 하나는 세계 문학 전집이었습니다. 외가댁에 가면 꽤 두꺼운 문학 전집이 벽장 한쪽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책을 좋아서 사셨을 리는 없구요, 저희들이 자주오고 또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방학 때면 바다가 보이는 2층 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혹은 벽에 기대고 누워서 대부분의 책들을 다 읽었습니다. 지금은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읽었던 느낌들은 살아 있습니다. 죄와 벌, 주홍글씨, 백경, 무기여 잘있거라, 서부전선 이상없다... 등등 제목들이 기억납니다. 그 중에서 어린 마음에 소설이 이렇게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슬퍼하게 하고... 또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만드는구나... 라고 느낀 작품이 있었습니다. 심리묘사가 탁월했고, 상황을 감성적인 극단까지 몰고 가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소설의 이름은 바로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입니다.

 

이 작품은 배경을 알면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는 13녀 중 둘째입니다. 4남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모두가 천재들입니다. 사진을 보시겠습니까?(사진1) 이 사진은 에밀리 브론테의 남동생인 브란웰이 그린 초상화입니다.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고동색 옷을 입은 여성이 샬롯 브론테입니다. ‘제인 에어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이 소설 역시 영국 문학사의 계보를 잇는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중간이 에밀리 브론테입니다. ‘폭풍의 언덕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세익스피어 이후에 영어를 가장 아름답게 사용한 작품으로 평가 받습니다. 마지막 검은 색 옷을 입은 당돌한 표정의 여성이 앤 브론테입니다. 언니들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녀 또한 좋은 소설을 썼습니다. 남동생 브란웰 브론테 또한 대단한 예술가적 소양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이 네 남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우울했습니다. 작품들이 어둡고 심경이 복잡합니다. 독자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같은 심리로 흥분하고 슬퍼하며 분노하게 만듭니다. 나아가서 브란웰 뿐만 아니라 세 자매가 모두 20대 말에, 혹은 갓 30이 되면서 모두 질병으로 죽습니다.

 

천재적이었지만 불행했고,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신앙으로 자랐지만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했던 한 가족과 그들의 삶이 형상화된 소설을 보면서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오늘날의 교회를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당위를 인정하지만 서로의 가슴에 깊이 뿌리내린 차가운 폭풍의 언덕들을 고민합니다.

실은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은 에밀리 브론테의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성공회 신부, 즉 영국 국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일찍 잃습니다. 우울에 빠집니다. 교회를 돌보는 일과 설교를 준비하고 책을 쓰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지 무관심했습니다. 자녀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을 발휘할 때도, 그들의 재능이 참으로 우울하고 불행한 상상과 더불어 소설로 만들어질 때도, 아들이 약물과 질병으로 죽어갈 때도, 딸들이 결핵이 걸릴 정도로 영양이 부족하고 건강관리를 하지 못할 때도 아버지인 그는 자신의 슬픔에 집중했습니다. 둘째 딸 에밀리 브론테가 거실의 소파에서 쓸쓸히 죽던 날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목사는 건너편 자신의 서재에서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든 찬바람 부는 광야에서 네 자녀들이 한 사람씩 마음이 병들고 육신이 병들어 죽어가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너무 깊이 뿌리박힌 찬바람의 언덕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있고, 지식도 있고, 교양도 있고, 무엇보다 목회자의 가정인데... 이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대화 없고 소통되지 않고 차가운 바람만 부는 얼음 언덕이 되어 서로를 밀어낼 수 있을까요? 이 가정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였습니다.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고 눈물 흘립니다. 그런데 현대교회가 가장 못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믿고 구원을 얻고 예배하고 헌신하는 것은 좋은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 잘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 맞는 말인데.... 우리의 관계는 슬픕니다. 딸의 죽음이 벽 하나 너머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자신은 내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던 비정한 아버지처럼....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이 눈물과 고통을 삼키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도들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믿음과 구원을 확신하며 예배하고 봉사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는 신앙, 여러분... 이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람의 사랑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을 서로에게, 세상에 대하여 실현할 때 서로가 교회이며 성도임을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말이 아닌 삶이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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