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람 | na kim | 2018-12-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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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사람 저는 베드로라는 사람이 참 좋습니다. 그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소위 참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허점 많고 실수가 많습니다. 시몬이라는 이름 또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네가 시몬이라 불리지만 앞으로는 베드로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시몬이라는 이름은 당시 ‘예수’나 ‘요한’만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나 요한은 시대적인 의미가 있는 이름입니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이고 성경에 여호수아나 예수아 등이 같은 어근을 가진 비슷한 이름입니다. 요한은 ‘자비로우신 여호와’라는 뜻이고 ‘요하난’도 같은 뜻입니다. 당시 그들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어려웠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구원을 사모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이라는 이름은 원래 ‘듣다’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쉐마 이스라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신명기 6장 4절에 “들으라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말씀을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말씀으로 받아서 ‘쉐마’로 불렀습니다. ‘쉐마’와 ‘시몬’은 같은 어근입니다. 따라서 시몬은 ‘잘 듣는다’는 뜻의 좋은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름의 뜻 그대로 형제의 말을 듣고 예수께로 왔고, 예수의 부르심을 듣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 듣고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16:16) 정말 그는 잘 듣고 잘 따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만일 시몬이 ‘아무 말’이나 잘 듣고 따르는 사람이면 어떻게 될까요? 즉, 하나님의 말씀과 뜻뿐만 아니라.... 다른 음성, 다른 말, 다른 뜻을 듣고 따르면 어떻게 될까요? 잘 듣기는 한데... 그야말로 너무 잘 들어서 우유부단한 사람, 쉽게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는 사람, 쉽게 유혹받고 넘어지는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베드로는 가장 아름다운 신앙을 고백을 하고 바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도 잘 듣는 사람이었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염려와 두려움의 말들에 대해서도 마음과 귀가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물 위를 걷는 모습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기가 막힙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면서 정말 어리석은 두려움입니다.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나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는 베드로의 요청은 참으로 담대하지 않습습니까? “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순종하여... 흔들리는 배 위에서.... 죽일 듯 달려드는 바다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자 용기입니다. 베드로는 참 잘 듣는 사람입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베드로는 왜 바다에 빠져듭니까? 그가 다른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염려의 음성입니다. 예수를 보고 그 음성을 들었더니 죽음의 바다에서 파도를 넘는 믿음으로 걸을 수 있었는데, 파도를 보고 바람의 소리를 들었더니 검고 깊은 죽음의 바다로 빨려들어갔습니다. 시몬, 듣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시몬이라는 이름은 부정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우유부단한 사람, 갈피를 못잡는 사람, 여러 음성을 듣고 우왕좌왕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몬의 별명이 갈대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갈대일 때, 그가 두 가지 음성을 함께 들을 때... 그 음성을 구별하지 못할 때... 복음은 그에게 들어왔지만 여전히 세상을 버리지 못했을 때.... 그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날 그에게 당부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 22:31-34)
예수님께서 거듭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그가 들어야 하고,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그는 베드로입니다. 반석입니다. 그의 믿음 위에, 그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설 것입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듣지 말아야 하는지 구별하지 못하는 베드로가 아니라... 그 모든 방황과 시련의 끝에 이제는 오직 복음으로 돌아와서 오히려 형제들을 굳게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우지 않고 담을 수 없고, 버리지 않고 취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를 질 수 없고, 꽃을 버리지 않고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나무의 영광은 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에 있습니다.
2018년,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간을 살면서... 복음 아닌 것을 내려놓는 일, 복음적인 삶을 선택하는 일에 용기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의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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