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벌판을 걸으며 | na kim | 2018-12-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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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벌판을 걸으며 이런 한시가 있습니다.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내리는 벌판 한 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이 발자국이 /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가 썼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실은 이양연(李亮淵 1771~1653)이라는 선비가 썼습니다. 묻혀 있던 이 시가 유명해진 것은 두 사람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백범 김구입니다. 그는 안두희에게 암살 당하기 1년 전 자신이 젊었을 때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마곡사라는 절에 머물면서 이 시를 써서 기증했습니다. 김구 선생 정도 되면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역사적 의무로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글은 최근에 다시 유명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인 여민1관에 김구 선생의 큰 초상화와 함께 이 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쯤 되는 사람이라면 이정도의 역사적 의무와 책임으로 사는 것은 좋은 일 같습니다.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추어 사이클 대회가 열렸습니다. 평소에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대부분의 운동에서 아마추어 이상의 기량을 펼치는 운동광이었던 주인공은 출발 총성이 울리자 선두권으로 튀어나갔습니다. 열심히 달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어떻하지... 어쩌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절부절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마침 그곳이 한강변에 위치한 자기 집과 가까웠습니다. 안되겠다... 빨리 집에 가서 해결해야겠다.... 그는 선두권에서 같이 달리던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친구가 따라 가주겠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곁길로 빠져서 자기 아파트 단지로 후다닥 들어갔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와보니 큰 일이 났습니다. 그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까지 따라와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요? 자기 앞길 달리기도 바쁘고, 당장 화장실은 급한데 자기 뒤에서 자기를 보고 따라온 사람들까지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혹은 눈이 내려서 세상에 덮이고 무엇이 길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얀 벌판을 걷는 나그네가 있다고 합시다. 그에게 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걸어야 할 길의 이정표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답은 Yes 이기도 하고 No 이기도 합니다. 왜 No 일까요?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책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저 사람 때문에 이런 저런 잘못된 삶을 살았노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고, 결과 또한 자신의 책임입니다. 사이클 대회에 출전한 사람은 자신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의 경계를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눈 덮힌 계곡을 걷는 나그네 또한 다른 사람의 발자국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 Yes! 일까요? 우리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는 보다 높은 가치와 연결된 삶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가치, 더 나은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의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그저 앞만 보고 살기로, 나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고 살기로 결정한다면 yes가 아니어도 됩니다. 만일 우리에게 신앙이 없고, 예수가 없고, 진리가 없고, 복음이 없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성도가 아니고 교회가 아니라면.... 만일 우리가 나 하나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나의 만족과 필요가 내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면...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신앙이 있고, 우리가 성도이고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피조물의 본능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부르심을 받아서 성도와 교회라고 불리며 살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주지 마세요...나는 나 한 사람 믿음 책임지기도 힘들어요...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네 그 말씀도 옳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는, 성도들 중 누구는 마치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여러분을 위해서 땀 흘리며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를 질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그것이 우리를 성도와 교회로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르심에 우리가 믿음으로,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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