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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감옥 김나래 202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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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감옥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바빴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단기 선교팀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습니다. 어느새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새벽부터 그때까지 먹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습니다. 뭐 먹을만 한 곳이 없을까.... 주변을 스캔하는데 바로 앞에 월남국수 집이 보였습니다. 밖에서 안이 보이도록 인테리어를 했는데 테이블은 거의 치워놨고, 길게 놓인 벤치에 창 바깥쪽을 보고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 비가 왔겠다.... 비오는 날에는 원래 뜨끈한 국수에 파전을 부쳐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생각할 것도 없이 벌써 식당 안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저기 반대편에 한 사람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뭔가를 손에 만지작거리면서 저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잠시 떨궜다가 제가 시선을 돌리면 다시 저를 쳐다봤습니다. 뭐지....? 아는 사람인가....? 20대 중반 정도의 흑인인데다가 필라델피아 시내여서 제가 아는 사람일 리는 없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창밖을 보고 앉았는데 계속 그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음식이 다 됐습니다. 받으러 갔더니 어느새 그 청년이 저보다 먼저 계산대 앞에 와 있었습니다. 종업원이 그에게 무엇을 도와줄까 물었습니다. 그가 물을 한 컵 달라고 했습니다. 한 손에 일회용 컵에 물을 받아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내프킨을 들고서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들고 제 자리에 앉았는데, 그도 한 3m 정도 떨어진 곳에 의자를 놓고 앉았습니다. 그의 몸 방향은 계산대인데, 시선은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자리를 저쪽 구석으로 옮겼습니다.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의자를 당겨서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식당에 다른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정말 이상했습니다.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고 제가 시선을 돌리면 다시 나를 바라보는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왜 저럴까....? 사실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초보 홈리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행색이 아직 그리 많이 망가지지 않은 것, 노골적으로 도와달라고 요구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무척 허기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끔 콜록거리는 것이.... 건강도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저 사람, 어떻게 하지....? 제가 조금 전에 그의 행동이 불편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났습니다.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충 먹다가 말았습니다. 그날 점심 식사는 망쳤습니다. 수저를 놓았는데, 이걸 놓고 가면 저 사람이 먹을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이 잔반을 먹지 못하게 주방 쪽에 식판을 줬습니다. 여전히 애매한 표정과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던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비로소 그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여보세요. 당신이 마스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가까이 오지 마시고,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여기 돈을 드릴테니까 이걸로 오늘 식사를 해결하세요.”

 

놀라는 그에게 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돈을 줬습니다. 그가 제게 가까이 올까봐... 휙 돌아서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몇 일 동안 저는 시선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기억을 떠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양심의 부담을 떨쳐내기 위해 그에게 얼마의 돈을 주고 나왔습니다. 물론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면 시선감옥이 아닌 시선지옥의 기억에 갇혀 있지 않을까요. 다만 제가 지금 주목하는 것은 그때 느꼈던 저의 감정의 흐름입니다. 그날 짧은 시간, 저는 차갑고 날카로운 감정들이 저의 기억을 긁고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주린 그에 대하여 불편하고 짜증나고 화났던 저의 마음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저는 아마도 꽤 오랫동안 저를 바라보던 그 청년의 시선에서 자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감옥에서 해방되는 길은 망각일까요? 아닙니다. 이 시선에서 자유하는 유일한 길은 내 마음과 생각이 바뀌고, 나의 시선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수로보니게 여인과 열두해를 혈루증 앓는 여인과 귀신들리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마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감옥에서 해방되고 복음으로 자유한 성도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이 나를 이길 때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에 의지하여 오늘도 주님 앞에 예배자로 엎드립니다. 주님,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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