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 홈 >
  • 예배와 말씀 >
  • 목회 칼럼
목회 칼럼
아버지가 되다. 김나래 2021-05-09
  • 추천 0
  • 댓글 0
  • 조회 364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14/5912102

 

저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좀 먹먹하고 무겁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좋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참 아끼시고 좋아하셨는데... 제게는 아버지에 대한 벽이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이 옳다고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말을 해도... 제가 좋은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버이 주일이 되면 늘 괴롭습니다. 말씀 준비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한번은 대학에 다닐 때 교회의 일로 아버지께 다른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나도록 맞아도 싸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때 저는 너무 정의롭고 정당했습니다. 대학생이되면서 중고등부 교사를 했고, 교회 행정에 대해 교사로서 담임 목사님인 아버지께 의견을 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잘잘못이 분명한 일이었는데 아버지는 결정을 미루셨습니다. 교회가 이러저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교사를 하지 않겠다고... 좀 대단하게 아버지께 대들었습니다. 많이 입장이 곤란하셨을텐데.... 그냥 알겠다고만 하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무슨 일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만큼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구요... 다만 제가 꽤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과 아버지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녀석 머리 좀 컸다고.... 감히....’ 화가 나셨을까? 아니면 많이 컸네, 이 녀석...’하고는 그냥 귀엽게 여기셨을까?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소리치는 저를 물끄러미 보시던 그 표정을....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를 생각해도 여전히 읽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조들 중에서 가장 예수님의 잘 예표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요셉입니다. 그의 인격과 신앙은 늘 모든 성도의 거울이 되고 교훈이 됩니다. 하지만 그가 딱 한 번, 아버지 야곱과 대립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자녀들을 야곱이 축복하는 자리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열두 지파의 반열에 얼리겠다는 결정을 하고 야곱은 차자였던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장자였던 므낫세에게 차자의 축복을 합니다. 요셉의 생각과 기대와 충돌하는 장면이고 성경은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48:18-20)

아버지라면 반드시 감당해야 할 두 역할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일입니다. 둘째, 삶과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야곱은 평생 그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누가 봐도 자신보다 나은 아들 요셉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평생 자신의 뜻으로 뛰고 욕망으로 굴러서 결국 이렇게 된 삶을 보면서 깨달았던 믿음과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아들아, 안다...나도 안다. 니 마음에 무엇이 요동치는 지 안다. 무엇에 분노하는지, 무엇에 눈물짓는지, 무엇을 옳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안다. 나도 그랬었다. 그런데 아들아, 내가 이제서야 알겠다. 살아보니 알겠고, 눈물 흘려보니 더욱 알겠다. 나는 원래 작은 자였고,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못난 사람이었다. 내 아비의 축복이 나를 비켜갈까 두려워하고 분노했었다. 연약했기에 비겁했고 가진 것 없었기에 욕망했었다. 아들아, 내 험악한 인생의 끝에서 이제야 내가 알겠다. 알기 때문에 너의 이 두 아들, 이렇게 축복한다. 인생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가장 선하다.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어버이의 날에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저의 아버지됨을 고민합니다. 저를 보시던 아버지의 시선과 자녀에 대한 저의 시선을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예수님과 함께 한 걸음 김나래 2021.05.16 0 263
다음글 열등감과 절박함 김나래 2021.05.02 0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