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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Makes a Church Toxic?” 김나래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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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Makes a Church Toxic?”

 

필립 얀시(Phillip Yancy)라는 기독교 작가가 있습니다.  현대 미국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좋은 글을 쓰고 있는 평신도 저술가입니다.  그는 제가 24년 전, 미국에서의 첫 수업 시간에 추천도서로서 읽어야 했던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Jesus I Never Knew'(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이었고 영어 실력 때문에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감동과 충격은 상당했었습니다.  종교가 아닌 복음으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사람의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를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그가 쓴 글 하나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는 'Church‘(교회)라는 단어와 ’Toxic'(독성)이라는 단어를 연결해서 “What Makes a Church Toxic?”(무엇이 교회로 하여금 독을 내뿜게 하는가?)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선한 영향력과 십자가의 향기가 아닌 세상보다 악한 독성을 내뿜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얀시는 세가지로 답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의 상황이 전제된 것으로 이해하면서 읽으면 좋습니다.

 

첫 번째 그가 만나는 독성(toxic)의 원인은 교회 안에 팽배한 두려움(FEAR)입니다.  얀시는 교회가 두려움을 이용해왔다고 말합니다.  지난 세기동안 교회는 가톨릭 출신의 대통령(ex.존 에프 케네디), 아마겟돈, 공산주의, 대환란, Y2K, 에이즈, 세속적 인본주의, 동성애, 사회주의, 신세계 질서(일루미나티)와 세계정부, 코로나 팬데믹 등의 다양한 현상과 가상의 적들에 대한 공포심을 과장해왔습니다.  그 중에 어느 정도의 상황적 정당성에 대해 고려할만한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허술한 음모론에 근거한 주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일부 정치세력의 이익에 이용당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의 얼굴로 근대를 넘어 현대 세계사를 주도했고, 그 선봉에는 늘 선교사들이 있었다는 것도 교회가 고민해야 합니다.  복음의 순수성과 정치적인 목적이 섞일 때 늘 패배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오늘날 전세계가 함께 극복해야 할 전염병에 대해서까지 신앙과 정치가 섞여 있었던 것을 우리가 경험한 부끄러움입니다. 

 

두 번째 얀시가 지적하는 교회의 독성은 ‘배제’(EXCLUSION)에 있습니다.  그는 남부 아틀란타에서 성장했습니다.  그가 출석했던 교회는 출입문에 예배 참석을 원하는 유색 인종들을 쫓아내는 문지기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회가 얼마나 복음에 적대적이었는지를 이후에 깨닫습니다.  바리새인이자 로마의 시민이었던 바울은 여전한 차별과 배제가 있었던 초대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니라.”(갈 3:28)  하지만 1세기 교회뿐만 아니라 2000년을 지난 오늘날의 교회 또한 여전히 장벽이 있고 차가운 배제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일을 반대한 일과 차별금지법 등에 대해 극단적 반대를 하는 일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세 번째 얀시가 지적하는 교회의 독성은 ‘경직성’(RIGIDITY)에 있습니다.  그는 현대  개신교회가 전세계적으로 5만4천개로 나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서로에 대해서 자유롭고 허용적이기 때문에 나눔과 분리됨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분쟁하고 분리하게 된 것은 서로의 작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름을 견딜 수 없어하기 때문입니다.  지적하고 판단하며 정죄하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타인의 생각에 대한 지나친 분노의 원인은 바로 경직성에 있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사도성까지 부정하는 갈라디아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갈 5:1)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복음을 설명하기를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19)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 선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복음을 해석하는 일과 적용하는 일에 있어서의 차이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했습니다.  그의 겸손하고 유연함이 오늘날 교회에 필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편지(고후 3:2)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 모습입니다.  회복해야 할 역할이면서 지켜야 할 영향력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향기가 아닌 독성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도와 교회가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의 본래적 향기와 역할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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