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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과 나사로의 시대 김나래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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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과 나사로의 시대

 

유럽과 미국, 한국을 비롯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비교적 잘 대응해온 국가들이 최근 'WITH CORONA'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소위 일상회복으로 들어갔었습니다.  유럽에는 챔피언스 축구 리그에 팬들이 가득 차고, 텍사스 휴스톤에서는 ‘트레비스 스캇’(Travis Scott)이라는 힙합 가수의 콘서트에서 너무 많은 관객들이 몰려서 8명이 압사하고 수백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에도 그동안 엄격하게 제한했던 식당이용의 인원제한이 풀렸습니다.  아... 이제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가... 대부분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매우 심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아직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국민의 61%가 백신접종을 마쳤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39%는 아직 맞지 않았습니다.  1억 5천만명 이상이 백신을 맞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겁니다.  한국도 81%의 국민이 2차 접종을 마쳤습니다.  19%가 맞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천만명 이상이 백신을 맞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과는 참담합니다.  방역 수준을 높이면 못살겠다고 야단이고, 환자가 많아지면 방역을 못한다고 야단입니다.  우리는 정말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의 일을 하고 있는 ‘파티마 하산’이라는 여의사가 한국의 한 언론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녀는 백신 국가주의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접근권이 인종별로 차별이 있었던 것을 지적합니다.  과학발전의 결과가 인종과 국가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특정한 국가에 혜택이 집중되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번 COVID-19의 상황에서 백신은 철저하게 차별적이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중국과 한국 등 북반구의 국가들에는 백신이 넘쳐납니다.  누구나 워크 인 해서 백신을 접종할 수 있습니다.  유통기간이 지나서 수많은 백신을 폐기하기도 합니다.  백신에 대한 거부감으로 능동적으로 맞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개발 국가에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몇몇 나라의 예를 들겠습니다.  백신 접종율이 잠비아 5%, 시리아 4%입니다.  말라위, 가나와 수단은 각각 3%입니다.  탄자니아, 카메룬, 니제르 공화국, 말리, 남수단, 콩고, 나이지리아가 각각 2%입니다.  콩고와 예멘은 1%입니다.  1% 이하의 나라들도 있습니다.  아이티 0.5%, 부룬디는 0.0169%입니다.  백신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가난한 나라들에 공급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백신을 만든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지적인 재산으로서의 백신을 다른 나라와 나누려하지 않습니다.  주요국 중에 캐나다와 한국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고, 미국은 지난 5월에 아주 제한적으로 지적재산권의 행사를 유예하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부분 유럽의 국가들은 지적재산권이라는 명분으로 백신의 생산과 공급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농업자본을 가진 회사들이 매년 생산되는 식량의 1/3을 산과 바다에 폐기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자본의 논리입니다.  코로나가 계급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코로나보다 백신은 더 계급적입니다.  ‘백신민족주의’, 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백신자본주의’입니다.  의료기술과 자본이 결합하여 의료행위가 이익 창출의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제약회사들은 큰돈을 벌었습니다.  백신은 국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인도에서는 델타변이가 발생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오미크론이 발생합니다.  백신을 맞기 전보다 오히려 환자의 수가 늘었습니다.  인류가 함께 공존공생의 의지를 가지고 협력하기 전에..... 바이러스가 더 빨리 협력하고 스스로 변이를 만들고 새로운 방식으로 인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21세기 인류의 역사에 가장 넓고 깊은 지적인 자신을 가진 현대 인류는 단세포인 바이러스보다 더 멍청하게.... 더 어리석게....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패배하고 있는 중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 등장하는 나사로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설명합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  이 비유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땅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삶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풍요와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괴로움도 연결되었습니다.  세상에서의 고난과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위로가 연결되었습니다.  부자가 이 세상에서의 연결되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실천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그의 삶은 또 다른 연결의 결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오미크론의 시대, 스스로 진화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세상은 연결되었고, 이웃의 연약함과 가난 또한 나와 연결되었습니다.  아프리카가 건강하지 않으면 미국이 건강할 수 없고, 그들이 병들면 미국 또한 그렇습니다.  나사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나사로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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