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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와 페쿨리움 김나래 20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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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와 페쿨리움 

 

오늘날 달란트는 좀 값싸게 들립니다.  한국학교와 유년주일학교에서 달란트 시장을 참 많이 합니다.  상으로 달란트를 주고 잔치날에 5달란트 주고 떡볶이 사먹고, 3달란트 주고 필기구 사고, 10달란트 주고 장난감도 삽니다.  예수님은 왜 비유를 통해서 마치 예수님 자신처럼 보이는 주인이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눠주셨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떡볶이도 못사먹게 말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1세기 유대사회에서 사용하던 화폐의 단위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 단위를 데나리온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로마 시대 징병되어 전쟁터로 나간 병사들이 1년에 받는 연봉이 225데나리온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00데나리온이 모이면 1므나가 됩니다.  60므나 정도가 모이면 1달란트가 됩니다.  그러니까 약 6000이상의 데나리온이 모이면 달란트가 됩니다.  노동자들의 20년 정도의 연봉이 모여야 한 달란트가 되는 겁니다.  하루 150불 정도의 일당을 받는 노동자라면 100만불 가까이 되는 큰 돈입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가 1년에 거두었던 모든 세금이 200달란트라는 기록이 있고, 로마의 총독도 달란트 단위의 재정을 집행하려면 로마 중앙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어쨌든 한 달란트는 당시로서는 아주 큰 돈입니다.

 

또 하나 알아야 하는 개념은 ‘페쿨리움’이라는 겁니다.  ‘페쿨리움’이란 주인이 농사를 위해서나 만약을 대비해서 종에게 맡기는 돈을 말합니다.  모든 종들에게 주어지는 권리일까요?  아닙니다.  주인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종에게만 행하는 일입니다.  로마의 권위와 질서가 지배하는 1세기입니다.  엄격한 신분 사회입니다. 종과 주인 사이에는 절대 건너서는 안되고 넘을 수 없는 깊고 넓고 차가운 강이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이 종에게 자신의 재산과 권위를 이양하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주인이 돈이 많고, 종이 믿을만 하다한들.... 맡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를 보십시오.  어느 주인이 종에게 5달란트를 맡겼답니다.  2달란트를 맡겼답니다.  1달란트를 맡겼답니다.  심지어 로마의 황제도 자신이 파송한 총독에게 달란트 단위 이상의 재정을 임의로 집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이 주인은 종 셋을 불러다가 5. 2. 1의 달란트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사회였습니다.  대부분 민중들은 토지와 재산을 수탈당하고 반 노예의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달란트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청중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우와... 달란트를 페쿨리움으로 준다고? 나도 그런 주인 만나고 싶다.... 나도 달란트 한번 만져보면 소원이 없겠다.... 이 바보 같은 한 달란트 받은 종 같으니라고.... 그렇게 큰 신뢰와 은혜와 돈을 받고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아깝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이야기가 있기나 한 걸까....?  정말 그런 주인, 그런 종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바로 여기에 달란트 비유의 핵심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주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모든 왕, 모든 주인, 모든 신랑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로마의 황제보다 더 큰 권능과 영광을 가지신 만왕의 왕이십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은 이제 곧 다른 나라로 가십니다.  세상에서 거절당하셨지만 세상을 원수로 삼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 ‘성도됨과 교회됨’이라는 큰 페쿨리움을 주셨습니다.  주인되신 예수님은 세상에게 페쿨리움을 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주인이십니다.

 

그런 사랑과 신뢰를 받은 종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에 등장하는 모든 종들은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 청중들이며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입니다.  그들과 우리가 왕이신 예수님이 허락하신 페쿨리움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도와 교회가 받은 사랑과 은혜는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것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일만 달란트를 왕에게 탕감받았지만 일백 데나리온을 빚진 친구를 용서하지 않는 신하의 비유와 함께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 안에 십자가의 사랑과 목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의미가 마음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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