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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란트는 어디로 갔을까?” 김나래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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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란트는 어디로 갔을까?”

 

달란트 비유에서 이헤하기 어려운 한 가지는 땅에 묻힌 한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라는 주인의 명령입니다.  충성하고 순종하면 더 큰 상을 주신다...? 정도로 해석합니다.  소위 ‘상급’이라고 말합니다.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기 위해서 이 땅에서 열심히 하자!!!  뭐 이정도의 해석입니다.  만족한 대답이 아닙니다.  마 24-26장에 전개되는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땅에 묻혔던 한 달란트는 왜 열 개나 되는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상급’이나 ‘직분’에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나 은사로 생각하셨다면 정말 잘못 이해하고 계신 겁니다.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에 대한 이해에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을 불러서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달란트 단위의 페쿨리움(신분제도가 철저했던 로마 사회에서 주인이 종을 위해 일정한 자격과 재물을 허락함으로 종의 신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허락했던 제도)을 줬습니다.  그것으로 더 이상 종이 아닌 주인의 뜻으로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으로 태어나서 종으로 살다가 종으로 죽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종의 신분을 물려줘야 했었는데, 주인이 자신에게 페쿨리움의 은혜를 줬습니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 큰 은혜를 줬습니다.  이 큰 은혜를 받은 종들은 딱 두 종류의 반응을 보입니다.  지혜롭고 충성된 종들은 주인의 은혜에 순종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마음껏 주인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주인이 허락한 은혜의 열매가 그들의 삶에 있습니다.  

 

한편, 주인이 허락한 은혜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종이 있습니다.  이 종은 자신의 주인이 세상의 모든 다른 주인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종들은 억압하고 빼앗고 착취하며 자신을 종으로 부렸습니다.  나는 종으로 나고 살고 죽고 물려줄 것입니다.  주인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이 허락한 은혜를 인정하지 않았고, 은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의 뜻대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주인을 정죄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억압하고 빼앗습니다.  우리에게 씨 뿌리고 농사할 땅도 없고 추수한 것도 없을 때도 우리의 모든 것을 착취했습니다.  자, 여기 당신의 것이 있으니 가져가십시오.”  주인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베풀었는데 어리석고 악한 종은 주인의 은혜를 짓밟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회계했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깨닫고 인정하고 순종했던 종들은 큰 칭찬을 받습니다.  주인과 함께 앉아 천국의 잔치를 즐깁니다.  은혜를 거절하고 주인을 정죄했던 종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문 밖에 서야 합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허락되었던 은혜, 그러나 짓밟혀서 땅에 묻혀버린 은혜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당연히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앞으로 여길, 은혜를 필요로 하고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가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마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주시기 전에 마 24:12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온 열방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미 창세기에서 야곱의 축복을 통해 예언되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담장을 넘는 가지’의 축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은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 달란트가 우리들의 삶에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허락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고, 아들은 자신을 페쿨리움으로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주인이 적고, 아주 가끔 종을 위해 선을 베푸는 주인이 있지만... 그 누구도 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종을 자신의 형제로 삼지는 않습니다.  종을 자신의 아들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제물로 허락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 나라의 백성으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세우십니다.  은혜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 어디에 있습니까?  이 은혜로 살고 있습니까?  이 은혜가 내 손과 발과 삶에서는 사라지고.... 묻혀 있습니까?  우리 주님이 은혜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성도와 교회에 경고하십니다.  허락된 은혜는 없는 듯 살면.... 빼앗기리라.... 빼앗아서....간절하게  은혜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어라!!! 말씀하십니다.  은혜로 삽시다.  받은 은혜가 우리의 말이 되고 손이 되고 발이 되는 삶을 삽시다.  그 은혜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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