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 행운? | 김나래 | 2022-02-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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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똥 행운?
3주 전에 주일 예배를 마치고 Kensington 으로 도시락 사역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날 도시락을 거의 다 나눠주는 시점이었습니다. 무엇인가 하늘에서 제 앞으로 뚝 떨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뭐지....? 하고 봤더니 새똥이었습니다. 제가 홈리스 사역에 나갔다가 새똥을 맞은 것이지요. 제 앞에서 막 도시락 꾸러미를 받고 있던 홈리스 형제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Oh, you got luck!" 저도 웃으며 동의했습니다. "Yes, I am lucky!" 함께 가셨던 권사님들도 목사님.... 오늘 로또를 사심이 어떠시냐는 농담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정말 저는 그날 큰 행운을 만난 것일까요? 로또를 사야했을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의외로 우리는 그런 미신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소똥을 밟으면 행운이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꿈에 누군가에게 쫓기면 키가 큰다고 했습니다. 돼지꿈은 많은 사람이 복권을 사는 이유가 될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운을 소망하고 불행을 피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욕구는 민간신앙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의 신앙의 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모두 나쁘거나 부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보편적인 욕망이면서 살아가는 중에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 우리의 신앙과 본질적인 충돌이 일어날 때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성경에서 야곱과 함께 소개되는 ‘드라빔’이라는 우상이 있습니다. 드라빔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시는 가족신이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상들 중에서 가장 작아서 20-50cm 정도입니다.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이면서 점을 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드라빔을 상속하는 아들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부자였던 아버지 라반의 집에서 야곱과 함께 나올 때 드라빔을 훔쳐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헬은 결국 드라빔과 함께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았을까요?
문제는 이런 신앙적 행태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에는 그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삿 17:5) 에봇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입던 예복입니다. 제사장들은 이 옷을 입고 두림과 둠빔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미가라는 사람은 왜 자신의 집에 신당을 짓고 에봇과 드라빔을 함께 만들었을까요? 에봇과 드라빔이 함께 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봇을 숭배하게 된 이유를 사사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삿 8:27)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으로 얻은 금을 모아서 기념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 에봇을 ‘음란하게 위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황금에봇에 무슨 신적인 영광과 능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섬기는 일이 발생했다는 말입니다. 드라빔이 우상이었던 것처럼 에봇 또한 우상처럼 섬김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경향은 다윗의 시대를 지나서 이스라엘 역사에 뿌리를 내립니다. 사무엘상 19:13에는 다윗의 아내 미갈의 우상숭배를 기록합니다. “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삼상 19:13)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왕하 23:24)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이 단행될 때 그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신접한 자, 박수무당을 제거하고, 우상과 가증한 형상들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스라엘은 이런 우상숭배의 전통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요? 어떻게 그들은 우상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은 ‘행운’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소원과 만족을 허락하는 능력일까요? 신앙의 본질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설명하셨습니다. 현대교회가 이 본질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의 내일은 어둡고 험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가 교회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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