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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隔離) 김나래 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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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隔離)

 

1. 다른 것과 통하지 못하도록 사이를 막거나 떼어놓는 것.

2. 전염병 환자 등을 따로 옮겨서 떼어놓는 것. 순화어는 `떼어놓음'.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현상, COVID19이라는 팬데믹(Pandemic)은 우리들이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많은 단어들을 일상화시켰습니다.  ‘팬데믹’이라는 말, PCR Test라는 말, 백신, 항체와 항원, 숙주와 매개, 확진자라는 말, 그리고 ‘거리두기’, ‘자가격리’라는 말 등입니다.  이런 단어들이 일상화된다는 것은 현대 사회가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가치를 실현하며 삶의 의미를 발전시킵니다.  인류의 지식과 철학적 자신은 개인의 관계의 확장으로서의 사회적 유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관계가 서로에게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21세이 초반에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팬데믹은 앞으로 미래세대가 살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이 지구촌에 살아가는 모두가 하나님이 허락한 일정한 ‘관계’속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나는 우리를, 우리는 이웃을, 이웃과 함께 더 넓은 이웃을 생각해야겠습니다. 

 

저는 요즘 ‘격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은 아닙니다.  지난 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종합검사를 했고, 갑상선암을 발견했고,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지금, 혹시 남아 있을 암을 발견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항암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다행히도 갑상선암의 항암치료는 비교적 어렵지 않습니다.  저요오드 식단을 10일 정도 하고, 방사선 치료를 10일 정도 받는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에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몸에 처방한 약물에서 일정한 방사능이 나온다고 하는군요.  제 몸과 호흡과 분비물에서 방사능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약 일주일 정도는 격리해야 합니다.  저요도드 식단을 하느라고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는 기간까지 합치면 2-3주 정도의 시간을 좀 재미없게 먹고 재미없게 살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 그렇게 스스로를 ‘격리’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격리’란 다른 사람과 사람, 혹은 물질과 물질 사이를 막거나 떼어놓는다는 말입니다.  서로에게 좋은 못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사랑하는 가족들과 성도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해야 하는 이유는 제 몸에서 해로운 무엇인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COVID19의 시대에 서로를 격리해야 하는 이유는 서로의 호흡이 서로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사람을 지어주신 것은 서로 사랑하며 함께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 2:18)고 느끼신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거룩한 사랑을 누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의 관계는 그래서 가정으로부터 시작하고 교회로 성장하며 세상을 섬기고 변화시켜야 할 이웃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관계의 거룩한 뜻을 실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격리’라는 단어를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경험하는 격리는 다행히 치료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오늘날 인류가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격리적 현상은 심각하게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반대될 뿐 아니라 교회가 나아갈 방행에 역행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격리적 현상은 인류가 하나님이 주신 관계를 소홀히 한 결과입니다.  든든하게 놓여야 할 관계의 다리에 오히려 장벽을 쌓고 나를 위해, 자국을 위해 부와 권력을 사용한 결과입니다.  전세계적 유행병인 팬데믹은 인류가 서로 이웃됨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온 결과입니다.  바이러스가 우리를 격리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기심과 차별로 서로를 격리해온 결과입니다.  지난 20세기 수많은 전쟁들은 약한 나라를 섬겨야 할 이웃이 아닌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부와 과학이 특정한 나라에 집중되고 어떤 나라는 질병을 치유할 약품과 과학자도 없는 불균형이 만들어졌습니다.  팬데믹이 아닌 인류가 안종의 장벽, 부와 가난의 장벽, 강대국과 약소국의 장벽, 남자와 여자의 장벽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팬데믹이며 또한 2022년 3월에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섬겨야 할 이웃됨을 확인하는 것이 믿음이며,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팬데믹의 시대에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원리를 삶에 적용하는 길입니다.  ‘격리’가 일상화되는 시대에 ‘관계’와 ‘연결’로 서로의 이웃됨을 확인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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