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 홈 >
  • 예배와 말씀 >
  • 목회 칼럼
목회 칼럼
“유산을 나누게 하소서!” 김나래 2022-04-03
  • 추천 0
  • 댓글 0
  • 조회 235

http://chodaepa.onmam.com/bbs/bbsView/14/6065000

“유산을 나누게 하소서!”

 

Westminster 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가르쳤던 Paul Tripp이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최근에 재미있는 책을 한권 냈습니다.  제목은 ‘돈과 영성’입니다.  돈에 영성이 있을까요?  재물에 영성이 있을까요?  당연히 그 자체는 중립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사랑하고 소유하려는 마음,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목적에 영성이 함께 합니다.  폴 트립 교수가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는 오늘날 돈이 가짜 신(神)의 자리에 올라가 있다고 말합니다.  누가 돈을 신의 자리에 올렸을까요?  당연히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가 책에서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왜 나의 믿음은 돈의 문제 앞에서 무기력한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돈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즉 내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나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아담과 하와가 유혹에 넘어갔다면 나는 재물에 대해 안전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누가복음 11장에는 다소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크게 분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거듭 “화 있을 진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어감을 살려서 번역한다면... “천벌을 받을 놈들!” 정도가 적당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화가 많이 나셨을까요?  바리새인들의 가식과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그런데 이런 중요한 말씀을 하는 중에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눅 12:13)

 

예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요?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식과 위선을 책망하시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돈과 명예를 사랑하는 그들을 ‘화있을진저!’라는 말씀을 거듭하시면서 꾸짖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청중들은 돈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내가 돈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의 욕망과 배를 채워주세요....그렇게 하시는 것이 메시야 아닌가요?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복음일까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복음일까요?  내가 시원하고 통쾌하면 복음일까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복음일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내 소원의 성취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의 성취에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바리새인들과 청중들은 여전히 그들의 문제와 소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원의 가장 일반적이면서 강력한 핵심은 어디 있습니까?  세상입니다.  곧 재물입니다.

 

Paul Tripp 교수가 던졌던 질문을 우리들 모두에게 드립니다.  자신에게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말씀으로 살고자 하는 나는 왜 물질 문제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것일까요?  재물 앞에서 나는 과연 어떤 인격, 어떤 가치, 어떤 성품으로 살고 있을까요?  나는 재물에 대해 안전할까요?  나로 인해 재물이 잘못 사용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이 나의 욕심과 만족 때문에 이웃에게 은혜로 흘러가는 길이 막히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의 소유인 재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복음과 책망 앞에서 여전히 재물을 나눠달라고 요청하는 어리석은 유대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영적 감수성 김나래 2022.04.10 0 245
다음글 모든 사람에게 임할 날을 준비하며 김나래 2022.03.27 0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