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봄'의 시간 | 김나래 | 2022-06-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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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지역에서 30대 후반에 담임 목회를 시작하셨던 K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유학하는 중이었는데 부드러운 성품과 좋은 말씀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회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K목사님 이전에 어려운 일을 경험했었던 교회였는데... K목사님과 함께 안정되고 성장하는 교회로 주목받았습니다. 지역 안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고, 앞으로 이 지역에 목회적 리더쉽을 발휘할 목회자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년 전 팬데믹이 막 시작되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갑자기 그 목사님이 교회를 사임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로부터 상처를 받아왔고,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로서의 삶을 접고 트럭 운전을 한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꽤 가까이 지냈었는데 그 정도의 결정을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는지, 혹은 그렇게 힘들어했었는지를 눈치 채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40대 초반, 아직 목회를 더 배워야 하고, 교회를 더 경험해야 할 나이인데 너무 일찍 크고도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힘들 때 곁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저 역시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제 나이셨던 때의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제가 저의 자녀만한 나이, 아버지께서 지금 저의 나이일 때.... 아버지는 늘 혼자 계셨습니다. 신학 서적으로 둘러싸인 2층 서재에서, 혹은 동네 어귀를 돌아오시는 특이한 걸음걸이에서, 그리고 교회당 안 아버지께서 늘 앉으시던 자리 혼자 기도하시는 모습까지.... 제 기억에 아버지는 늘 혼자 계셨습니다. 목회자는 그래야 하는 것인가? 늘 외롭고 힘든 자리인가...생각했었습니다. 늘 죄송하고 안타까웠던 것은 그때 아버지께 말을 걸어드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일상적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표면적인 관계는 유지되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과 아픔들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당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들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줄 수 있는 마음의 친구가 되어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늘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K 목사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옆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깊은 고민을 알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K목사님의 닫힌 마음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 옆에 있었던 저같은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겠습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정서적인 위기에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정서적인 위기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라봄’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정서를 객관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해와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기로 볼 것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무엇을 해결이라 볼 것인지에 대해 ‘바라봄’의 과정을 통해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창을 열고 내가 경험하는 정서적 격동의 상황과 그 격동을 만드는 이유를 천천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K목사님이 깊이 고민하면서 어려운 결정을 하기 전에 그의 마음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보다 나은 선택을 도울 수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늘 우리의 소원에 있습니다. 소원은 가치와 연결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모든 일들이 우리들을 정서적 위기로 몰고 가지는 않습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그것을 얻거나 잃거나 실패하거나 성공하는 어떤 과정에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과 내 삶의 선택이 반대방향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말로 포장된 잘못된 소원으로 내 삶이 무너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성공으로 포장된 처절한 실패를 외면하려고 이미 무너진 내 삶에 왜곡된 가치를 계속 공급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이뤄지거나 무너지고 있습니까?
최근 팬데믹 이후 사회 곳곳에서 억눌렸던 분노와 두려움을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표현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좋은 이웃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은 스스로의 정서적 격동에 대해 ‘바라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분노의 에너지가 우리의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결정하지 않도록 내 삶의 중요한 가치와 소원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K목사님과 가정을 생각합니다.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을 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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