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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숙아, 미…안해” 김나래 202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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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숙아, 미…안해”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겨울이 되면 교회당에 매일 모여서 성탄 준비를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있던 해운대에는 운촌이라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10명 가까운 아이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용숙’이라는 덩치가 아주 큰 6학년 여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번은 성탄 연습을 하는 중에 저와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용숙이는 제가 나이가 한 살 어린데 자신에게 대든다고 야단을 하고 저는 성탄절에만 교회 나오는 게 말이 많다고 하고… 우리는 와당탕탕… 싸웠습니다.   

 

         유년 주일학교 연습을 마치고 교회당 바로 옆에 있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중고등부 회장을 하던 형이  찾아왔습니다.  용숙이가 제가 와서 사과를 할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저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좀 있다가 형들이 또 찾아왔습니다.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자고 했습니다.  한 10시가 되었습니다.  형들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신 아버지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응도야,왜 자꾸 형들이 너한테 찾아오니?”  저는 너무도 당당하게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아버지께 설명을 드렸습니다.  용숙이가 평소에 이렇게 잘못했고 저런 못된 아이인데, 오늘도 나한테 이런 말을 했고, 그래서 맞짱을 떴는데…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뭐가 번쩍했습니다.  

 

“니가 교회 나오는 애들을 때렸단 말이야?  이놈이….”  

 

         아마 제가 용숙이를 때려준 것보다 한 10배는 더 맞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 질질 끌려서 교회당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용숙이 앞에 내팽개쳐졌습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명령하셨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해!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해!”  

 

         팔짱을 끼고 당당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용숙이 앞에서 비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맞으며 아버지께 간절히 말했습니다.  

 

“아부지, 지는 죽어도 그런 말 몬함미더!!!”  그리고 정말 죽도록 맞았습니다.  

 

“어디 못되먹은 녀석이 목사 아들이 되가지고 교회 나오는 아이들을 때려!  사과해”

“몬함미더.”    퍼벅~~

“해!”

“몬함미더.”  퍼버벅~~~

“해!”  

“죽어도 몬함미더.”  퍼버버버벅~~~~

 

   제가 고집을 꺾지 않자 아버지는 따라하라고 했습니다.  

 

“용숙아” / “용...숙...아...”  

“때려서 미안하다” / “때…때려서 미.. 미…” / “더 크게, 미.안.하.다.” / “...안하다!” 

 

         정말 죽을 것 같았습니다.  교회당을 뛰쳐나갔습니다.  해운대 밤거리를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아무리 목사님이라고 해도 제 편을 들지 않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고 결국 그 말을 한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그렇게 뛰어다니다 보니..... 마음이 덤덤해졌습니다.  좀 무섭기도 하고… 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안하다’ 하니 용숙이는 집에 가고 저는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되고 또 운촌에서 오는 10여명 되는 ‘용숙이와 악당들’ 계속 교회 나올테고… 저는 나름 최선을 다해서 버텼고…. 그렇게 밤거리를 좀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가끔 그때 생각이 납니다.  죽어도 못한다고 버텼던 일들이 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고개 숙이면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살짝 자존심을 접고 살면 얻을 수 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폭포수같이 흘렸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12살 사나이의 분노의 눈물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꼿꼿하게 분노하지 말고, 그렇게 눈물 흘리지 말고 한 걸음 나 자신을 뒤로 물리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지금 어디에선가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용숙이와 그 악당들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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