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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시대 김나래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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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시대

 

저는 198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던 날부터 거의 매일 학교이 정문에는 최루탄 냄새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사망한 전두환씨가 당시 군부를 등에 업고 쿠데타를 성공했고, 장기집권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젊은 정의감으로 저항하고 도전했고, 막 대학에 들어갔던 저도 혼란함과 분노가 함께 섞여서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4학년 때였습니다.  제가 속했던 대학의 총학생회의 대부분의 간부들이 갑자기 지명수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료 학생을 총학생회실에 가두고 폭행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폭행을 했다는 학생들도, 폭행을 당했다는 학생도 제가 너무 잘 아는 동료들이었습니다.  특히 폭행을 당했던 학생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면 대부분 취업준비를 하느라 바빴는데 그 형은 무엇인가 달랐습니다.  입대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총학생회 일을 원했고, 헌신적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인간적이었고, 친절했고, 너그러운 형이었습니다.  그런 형을 왜 제 친구들이 감금하고 폭행했을까요?   

 

당시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학생들이 강제징집 당하는 일이 많았고 그 형 또한 어느 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징집당해서 군복무를 했었습니다.  가끔 휴가를 나왔고 학교에 남은 동료, 후배들과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정리해보니 그때마다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노출되지 않아야 하는 사항들이 경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 형이 제대하고 난 후에도 그랬습니다.  학생 운동권 사이에 기밀로 유지되어 할 사항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경찰의 손에 넘어가 있었고, 수배를 받아서 은신하던 학생들이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형의 ‘프락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다들 너무 놀랐고, 당황했고,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가깝게 믿었던 형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이미 도청을 당하고 있었던 총학생회 간부실에서 친구 몇 명이 배신감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폭행을 저질렀고, 경찰에서는 크게 문제를 삼았습니다.  언론에서도 운동권 학생들의 무자비한 폭행사건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마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24세의 전도사여서 여과 없이 저의 생각을 제가 섬기던 학생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특히 겨울에 있었던 ‘문학의 밤’에는 제가 만든 노래와 시로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중고등부 때 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고, 성도들이 아는 청년이었습니다.  서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모두가 그런 줄 알았는데, 군 복무를 마쳤다면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겁니다.  20대 후반의 청년이 제가 지도하던 고등부 예배와 대학부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저의 설교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한 참 후에 그가 제가 찾아와서 고백했습니다.  저에 대한 ‘동향 파악’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 또한 한 때 운동권이었고, 군복무를 하는 동안 ‘녹화사업’의 대상이 되었고, 소위 프락치 활동을 했으며.... 그것이 싫어서 대학에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는데.... 경찰에서 교회로 가서 한 전도사의 동향을 파악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제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현 정부에서 대통령 령으로 경찰국을 설치하고 첫 경찰국장을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균관대학에 재학 중에 강제 징집을 당했고, 녹화사업의 대상이 되었으며 운동권 동료들의 활동을 보고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인노위 사건의 핵심에 있었고, 자신을 제외했던 모든 간부들이 검거될 때 오히려 자수를 했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랐던 동료들은 이후 투옥되고 죽기까지 했는데, 그들을 고발한 그는 경찰에 특채되었고, 승승장구하여 오늘날 경찰국장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고 그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합니다.

 

'밀정'이라는 영화가 몇 년 전에 상영된 적이 있습니다.  염석진 역을 했던 이정재 배우의 명대사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왜 동료들을 배신했는지 묻는 옛동지들에게 그가 쓰디쓴 얼굴로 말했습니다.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 줄 알았으면 내가 배신했겠나....”  아마도 경찰국장으로 임명된 그는 오늘날처럼 자신의 과거가 백일하에 드러날 줄은 몰랐을 겁니다.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출세하는 꿈만을 꿔왔을 겁니다.  혹 자신의 시대가 다시 왔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밀정의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생각과 이념의 차이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책망하고 고발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합니다.  동료의 믿음을 팔아서 자신의 출세의 길을 닦는 일도 없어져야 합니다.  우리 시대가 아프게 경험하는 과거 밀정의 시대에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아픈 역사를 떠올립니다.  국민들에게 밀정의 시대를 현실에서 경험하게 하는 우리나라가 참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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