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터 전성시대 | 김나래 | 2022-09-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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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터 전성시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을 아실 겁니다. 어떤 뜻일까요? 개처럼 가리지 않고 아무 일이나 해서 돈을 벌고, 차곡차곡 쌓고 불려서 노후를 정승처럼 즐기라는 뜻일까요? 이 속담의 의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처럼 번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개가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지는 않습니다. 나의 노동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정승처럼 쓴다는 것이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 역사에 정승이라는 직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을 죽이지 않고 ’정승‘이라는 자리에 앉혔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왕인 자신과 태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만큼 오르기 어렵고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조선시대에 정승은 영의정과 좌의정, 우의정을 의미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하고, 존경을 받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정승처럼 돈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노동으로 벌었던 재화에 철학과 도덕성을 부여한다는 말입니다. 정승이 되어서 자신의 쾌락과 영광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돈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고 함부로 쓰지 않고 철학과 목적을 가지고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내가 가진 부와 명성에 가치와 목적을 부여해야 한다는 좋은 속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 교회는 노동을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이 책망하신 내용에 근거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7-18)
그래서 중세에는 수도원이 발달했고, 말씀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을 선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시대에 교회는 노동에 대한 새로운 성경적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인간의 노동의 근원을 범죄 이후의 하나님의 징계의 명령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명령에서부터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세가지 명령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정과 결혼에 관한 명령입니다. 두 번째는 "일곱째날은 안식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것이 곧 예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 땅을 정복하라" 는 명령입니다. 이것을 노동의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가정을 조직하게 하시고,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동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가정과 예배와 노동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고, 영성이 있습니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기 때문이며, 성도의 가정과 예배와 노동은 하나님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풍성한 재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힘들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감사가 없고 기쁨이 없고 나눔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없고.... 하나님의 영성이 오늘날의 재물의 시대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풍성한 재물의 시대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를 우리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우리의 노동과 생산물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의 착하고 거룩한 뜻으로 날마다 거룩한 소산을 만들고 그 소산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일터를 축복합니다. 삶의 현장을 축복합니다. 착한 일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실천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노동에 기쁨이 더하고, 우리의 소산에 감사가 더하고, 우리의 예배에 영광이 더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 모든 성도들의 일터가 착한 일터의 전성시대를 이루어서 천국의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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