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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김나래 20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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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는 한 병원의 건물 벽에는 큰 부조 작품과 더불어서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같은 부조와 글귀가 그 병원 기도실 입구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늑 10:35)  그 병원을 지나면서 그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 있습니다.  그 병원을 이 말씀과 같은 생각으로 설립했고, 지금도 그 철학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합니다.  강도와 도둑이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그들을 돕고 치료하는 선한 이웃이자 의료기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생각할 때 의문이 생깁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왜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했을까요?  재미있게도 이 비유를 듣는 청중들은 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심지어 제사장, 레위인 혹은 율법사들.... 그들 자신도 딱히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와 역사의 강도를 만나서 피 흘리며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왜 민중들의 고통과 눈물을 외면했을까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그들이 여전히 자신들을 하나님과 말씀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있는 율법사도, 민중들도 다 알고 인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모든 종교적 행위를 주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는 유대인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강도를 만나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지나쳐간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한편으로는 안돼.... 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부정한 것과 접촉하면 안되지.... 죽어가는 한 사람을 돕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함께 제사해야 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을거야....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자신이 갈 길만을 가는데는 꽤 큰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할 겁니다.  예수님께 영생을 질문하는 율법사는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변에는 굶주린 민중들이 있어도... 자신은 그들을 외면하고 계속 율법을 지키며 예배할 수 있습니다.  민중들이 하루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방황할 때 자신은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지금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하는 율법사의 양심을 감싸고 있는 종교성이 보이십니까?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양심을 감싸고 있는 종교성이 보이십니까?  차라리 만일 그들이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그들이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실 앞에 좀 더 겸손하고 솔직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들이 그냥 지나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예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배하기 때문에.... 제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율법을 연구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롭고 경건하고 괜찮은 신앙인으로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의롭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성과 예배를 방패로 삼아서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보고 지나쳐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의 민중들은 강도를 만나 쓰러져가면서도, 그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보여주는 종교성 때문에 현혹되어서 여전히 그들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오히려 하나님과의 만남을 방해하고, 율법이 하나님의 마음과 충돌합니다.  그들에게 제사와 율법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두렵습니다.  내가 신앙이 있고, 양심이 있고, 신앙적 루틴이 있고, 직분도 있고.... 그래서 누구도 나를 비양심적이고 비신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강도 만난 이웃의 모습으로 나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나에게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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