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추억' | 김나래 | 2022-12-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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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추억’
제게는 성탄절과 관련한 오래 묵은 추억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새벽송에 대한 기억들은 특별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다녔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저녁에 다닌 것이 아니라 그 때는 정말 12시가 가까운 시간부터 새벽까지 부산 해운대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새벽송을 했습니다. 목사님이셨던 아버지는 새벽 찬양을 할 때 늘 첫 음을 잡아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 합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지휘를 하듯 손을 드시고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첫 음을 잡아주십니다. “기, 기, 기, 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면 똑 같이 “고, 고, 고, 고~~”, ‘저들 밖에 한 밤 중에’를 부르면 “저, 저, 저 저~~”하면서 첫 음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찬양을 하든지 다 네 개의 음이 똑 같았습니다. 성도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면서 청년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서 새벽송을 했습니다.
새벽송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닙니다. 기쁜 성탄절에 성도들이 다 보는데서 떼를 쓰고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손이 오글거립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보통 새벽송을 여러 팀으로 지역을 나눠서 가니까요, 새벽 4시를 전후로 한 팀씩 각 가정에서 받은 선물들을 들고 돌아옵니다. 해운대의 칼바람을 맞으면서 다녔기 때문에 교회당이나 사택으로 오면 난로 주변이나 아랫목으로 성도들이 모입니다. 중고등부 형, 누나들은 또 자기들끼리 모여서 게임을 하고 놉니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그날,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는 겁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잠시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유년주일학교 예배가 아침 9시, 성인 예배가 11시이잖습니까? 제가 너무 깊이 잠이 든 바람에 유년주일학교 예배를 놓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유년주일학교에서는 1년간 출석, 전도, 요절, 헌금... 등등을 통계를 내서 등수를 매기고 상을 줬습니다. 제가 새벽송을 마치고 잠을 자느라고 그 상을 못받은 겁니다. 이불을 박차고 나가서 그 때부터 떼를 쓰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이 나와서 식사를 하는데 목사 아들이 떼를 쓰고 울었습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엄마 잘못이라고... 아들이 늦잠을 자면 엄마가 깨워서 교회를 보내야지 왜 안깨웠냐고... 내가 다른 거 하다가 늦잠 잔 것도 아니고 새벽송하다가 피곤해서 그런 건데 안깨웠다고.... 원망을 하고 울고...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위해서 상을 따로 챙겨뒀다는 사실을 알 때까지, 그리고 사실 좀 부끄럽고 겸면쩍은 기분이 사라질 때까지 저의 땡깡은 계속되었습니다. 하하...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11살의 제게 ‘성탄절’하면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태어나보니 목사 아들이고, 커보니 늘 교회에 있었고, 때가 되니 모두가 성탄절을 축하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미를 위해서 새벽송을 따라갔고, 상을 못받는다고 생각하고 전 교인이 보는 앞에서 쇼를 했습니다. 제게 과연 예수님의 탄생은 얼마나 의미있고 복된 사건이었을까요? 새벽송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교회를 알고 신앙은 성장합니다. 다만... 제가 잊지 못하는 그 사건은 제게 중요한 교훈을 하나 줬습니다. 탄을 준비하다보니 성탄을 놓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신앙을 잊기도 합니다. 나는 한 번도 신앙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외면한 적이 없는데, 어느새 나는 불신앙의 일상을 살기도 합니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절기를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remember me'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어리석은지를 하나님이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바쁜 일상은 복음과 충돌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탄은 우리의 신앙적 일상을 만들어서 복음과 충돌하게 합니다. 11살의 성탄절을 기억합니다. 새벽송을 해서 피곤했고, 좀 늦게 잠을 잤고, 상을 못받을 것 같아서 쇼를 한번 찐하게 했고, 평생 그 부끄러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날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감사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고민해야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나는 성도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우리가 그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잔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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