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形象) 1 | 김나래 | 2023-02-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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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形象) 1
얼마 전에 한국의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갔다가 방문한 국가의 국가가 흘러나올 때 가슴에 손을 얹는 국기의 대한 경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참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부인 또한 함께 경례를 했다가 눈치를 채고 손을 슬그머니 내렸었는데요, 대통령은 끝까지 가슴에 손을 얹고 경의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제게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릴 적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마다 느꼈던 갈등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자라고 섬겼던 아버지께서 목회하시던 교회는 한국의 ‘고신교단’입니다. 지금은 다소 옅어졌지만 제가 자랄 때만해도 ‘고신’하면 반사적으로 ‘신사참배 반대’와 ‘투옥 성도’를 생각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강점했던 시기,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에 길들여진 국민으로 동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내선일체니 황국신민화교육이니...하는 것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 중에 당시 독립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던 교회를 회유하고 압제하는 방법으로 신사참배를 강제했습니다. 일본의 국교인 신사에 절하지 않으면 목회도 할 수 없고, 예배도 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목회자와 교회가 결국 일제의 핍박에 굴복하여 신사참배에 동참했습니다. 반면소수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투옥당하고 심지어 고문의 결과로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출옥한 성도들이 한국교회의 회개를 촉구하고 결국 세운 교단이 고신교단입니다. 그래서 ‘고신교단’ 하면 신사참배반대 혹은 출옥성도... 뭐 이런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고신교단이 워낙 철저하게 우상숭배에 대한 경계를 가지고 있었고, 저희들은 어려서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치 국가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해석했습니다. 물론 신사참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혹은 하나님이 아닌 깃발에 절을 하는 것은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명령에 어긋난다고 가르쳤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크게 표시가 나지 않아서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는데, 까만 제복을 입기 시작했던 중학교부터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조례를 했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 일제히 ‘충성!’이라고 외치면서 거수경례를 하지 않습니까? 대충 손을 올리는 척 하고 모자 앞에 있는 모표를 만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중학교 때는 키가 작은 순서대로 줄을 서는 바람에 들키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였습니다. 키 큰 순서대로 서서 조례를 했습니다. 늘 반에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키가 컸기 때문에 당연히 맨 앞줄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저와 같은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이게 정말 심리적이 압박이 보통이 아닙니다. 주여, 우짜면 좋습니까...? 어린 마음에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입학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키가 훤칠한 2학년 선배들이 반으로 들어왔습니다. “키 180이상 되는 놈들 운동장으로 튀어와!!!” 20명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안경을 낀 친구들이 들어갔습니다. 한 10명이 남았습니다. 선배들이 너, 너, 너... 들어가! 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5명이 학도호국단 기수단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고등학교에 학도호국단이 있었습니다. 조례를 할 때 학교기, 국기, 학도호국단기 그리고 모형총을 든 호위 두명... 이렇게 기수단이 구성되었습니다. 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저를 향해, 정확하게 말하면 제가 든 깃발을 향해 경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상이란 ‘나무, 흙, 돌, 쇠붙이 등으로 특정한 형상을 만들고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숭배하는 대상’을 말합니다. 유형의 모형일 수 있고, 사람일 수 있으며, 보이지 않는 사상이나 이념, 심지어 십계명과 같은 율법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상의 핵심은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여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특정한 형상의 힘을 입기를 원할 때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國旗)가 우상이 될 수 있는지, 국기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우상숭배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 지금 제게 묻는다면 꼭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날 생활 속에 스며든 미신과 무속이 너무 많다는 생각은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맡기고 삶은 무속에 맡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원이 많아지고 위험도 다양해진 오늘의 삶 속에서 우상숭배에 대한 철저한 경계를 가졌던 어린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는 삶을 결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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