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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식탁 김나래 202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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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식탁 

 

저는 지난 주에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운데 첫 번째 말씀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와 누가복음 6장 20절에서 ‘가난한 자’를 어떻게 함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네 가지 방식의 삶이 있을 수 있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첫째, 삶이 부유한데 마음도 교만하고 욕망이 많은 사람이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나오는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둘째, 삶은 부유한데 마음은 겸손하고 물질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삭개오입니다.  셋째, 삶이 가난하고 마음도 겸손한 사람입니다.  교만하거나 욕망을 소유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렙돈의 헌금을 하고 가슴을 치며 통애하는 과부를 예수님은 주목하셨습니다.  넷째, 삶이 현실적으로 가난한데 욕망은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잘되고 싶고 많이 가지고 싶습니다.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의 욕망에 사탄이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래프를 그려서 1, 2, 3, 4분면으로 나누어 생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에 드린 말씀의 요약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유대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택함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구원받은 성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네 사람, 부자와 삭개오와 과부와 유다는 같은 종류의 사람들입니까?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까?  이들은 같습니다.  유대인들이고 믿음이 있습니다.  예배하고 소망합니다.  이들은 다릅니다.  삶의 지향이 다르고 가치가 다릅니다.  이 네 사람이 함께 모여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만일 이 네 사람이 부자의 집 식탁에서 만난다면.... 아마도 마음과 삶이 함께 가난했던 과부여인은 집 대문 밖에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과부라면 이미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한번도 집안에 들인 적이 없었습니다.  율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부와 영광은 모두 자신의 의로운 삶의 결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부자와 여인의 식탁의 사귐은 실패할 것입니다.  

 

한편 삶은 가난한데 마음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유다는 부자의 삶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부자를 경멸합니다.  유다는 꽤 계급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당시 유대 땅에는 크고 작은 반란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는 '시카리'(Sicarri)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슴이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무정부주의자와 같았고 대낮에도 강도와 살인과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대제사장 요나단이 그들의 테러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또 사람들을 죽이거나 테러했습니다.  그들의 분노가 정의롭지 않았던 것은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이면서 그들 스스로가 가진 자가 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삶은 비루하고 가난한데 그들의 욕망은 들끓었습니다.  부자와 유다는 닮았으면서 또 다릅니다.  그들은 손을 잡을 까요?  같은 식탁에 앉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유다는 부자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거나 부자는 유다가 자신의 식탁에 앉는 것을 거절할 것입니다.  서로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부자의 식탁에 앉을 수 있을까요?  부자는 율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죄인의 대명사 세리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욕망과 부유한 삶은 정당화하지만 삭개오의 부유한 삶은 인정하기 싫습니다.  나아가서 삭개오가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행위는 너무.... 위선적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위협적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삭개오를 정죄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행위를 비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시민의 윤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산상수훈의 첫 머리에서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의 심령이 겸손하고 가난하며 그들의 삶이 세상으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라는 보화를 얻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고, 넘치는 은혜는 나눔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복음이며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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