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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 앞 ' 김나래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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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그 집 앞’이라는 가곡을 배웠습니다.  이 가곡을 가르쳐 준 음악 선생님은 인생의 맛을 알고 사랑을 알아야 이 곡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이 노래를 매일 흥얼거리며 부릅니다.  ‘그 집 앞’을 매일 지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일 지나는 ‘그 집 앞’이란 63번 선상에 있는, 몇 년 전까지 이정욱 집사님이 사셨던 집의 앞을 말합니다.

 

이정욱 집사님은 2003년 3월 경에 우리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당시 같은 지역에서 친구로 지내시던 윤태준 성도의 전도로 교회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몇 년 후 윤태준 성도가 여러 이유로 교회 출석을 중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정욱 집사님의 가정은 변함없이 교회를 출석했고, 학습과 세례를 거쳐 서리 집사가 되었고, 집사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성도들의 교회 간 이동에 많은 이민교회의 특성상 성인이 전도되어 교회로 나오고, 20년을 같은 교회를 섬기면서 신앙을 배우고, 학습과 세례를 받고, 서리집사와 안수집사로 교회를 섬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난 1월 1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 아시는 대로 이정욱 집사님과 저는, 이정욱 집사님과 우리 교회는 특별한 교제가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제가 좋아하는 이 강대상을 몸이 불편한 중에도 직접 만들어주셨고, 교회당의 곳곳을 수리하는 일을 기쁨으로 잘 감당해주셨습니다.  뒤에 있는 십자가와 위에 있는 조명, 교회당입구, 교회당 지붕과 지하 친교실과 주방까지 집사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늘 “좋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모든 일을 웃으면서 감당해주셨습니다.  이 사진(사진1)은 집사님이 사업차 텍사스로 내려가셨을 때 마침 제가 그곳에 집회가 있어서 만나서 함께 식사를 했던 장면입니다.  먼 곳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집사님은 그날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좀 특별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집사님을 조금 더 깊이 기억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지난 해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더 이상 기력이 약해서 목수일을 못하신 지 오래되었고, 노후를 위해 이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작년 여름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사를 다 마치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새 집에서 성도들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가을에도 이사한 집 정리를 마치면 예배에 참석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1월 8일 주일이었습니다.  일정을 다 마치고 집사님이 사시던 집 앞을 지나다가 문득 이 집사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집사님, 이제 이사 다 마치셨습니까?”

“네, 목사님... 이제 다 마쳤습니다.”

“그러면 언제 찾아뵐까요?”

“이제 언제든지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번 목요일 낮이 좋은데, 그 때 월남국수 드실까요?”“네, 좋~습니다.” 

 

이정욱 집사님은 화요일 저녁에 아내 되시는 김영화 집사님과 저녁 식사를 하시고 방으로 올라가서 다시는 자기 발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수요일 아침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받고 급하게 댁으로 갔을 때.... 의자에 앉은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습으로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이 아프고, 그립습니다.  주일에 전화를 했으니 그날 바로 찾아뵙든지... 다음 날 바로 찾아뵐 걸... 후회하고 또 후회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고, 우리가 서로를 섬기며 사귀며 손잡을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으므로... 허락하신 모든 날에 최선을 다할 것을 그랬다.... 자꾸 후회합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생각나고 그립고 후회됩니다.  더 많이 만나고 더 좋은 시간을 나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생각하고 성도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섬기고 사랑하고 나눠야 할 '거룩한 관계적 의무'만 있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 중에 허락하신 이 거룩한 의무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시 섭섭한 마음, 억울한 마음들이 이 거룩한 의무보다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는 날까지 이 거룩한 의무가 서로의 마음과 삶에 푸른 나무로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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