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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 김나래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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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

 

지난 메모리얼데이, 우리 교회는 3년 만에 뉴저지 Long Beach에 있는 기도원에서 가족수련회를 했습니다. 가까이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해변이 있었습니다. 초여름의 선선한 바닷바람을 느끼면서 돌아오는 길에 해변 입구에 자리 잡은 예쁜 벤치를 만났습니다. 그 벤치에는 이렇게 글이 새겨 있었습니다.

 

Sit here and rest with me.

Walk this beach, enjoy the sea.

In memory of Tony Cannizzo 1949-2021

 

저는 이 짧은 글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토니 카니조입니다. 나는 72년의 삶을 살았어요. 나는 이 해변을 정말 좋아했답니다. 파도를 따라, 바람을 따라 내 모든 발자국이 지워졌어도 이 바다는 나를 기억할 거예요. 이 해변을 걷고, 즐기고 그리고 여기 앉아 잠시 쉬면서 이 해변을 걸었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파도와 바람의 소리.... 그 속에 내 마음이 들릴 거예요.”

 

제가 너무 낭만적으로 해석했나요? 저는 그날 그 벤치가 참 좋았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쉴 자리를 만들어 놓았고, 내가 걸었던 바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놓았고, 나를 향해서 좀 쉬어가도 된다는 짧고 편안한 메시지를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혹은 그의 가족이 그 해변에 남긴 작은 수고가 몇 년을 지나 나에게 편지로 다가왔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미소를, 때로는 쉼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해변을 즐겼던 수많은 사람이 있을텐데....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은 적구나.... 물론 모든 사람이 메시지를 남기고 벤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벤치에 대한 그의 선택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 길을 거닐었던 수많은 사람들 중이 자신의 고민과 아픔과 즐거움과 쉼을 위한 발걸음을 옮길 때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원했던 한 사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얻었던 즐거움과 안식을 함께 나누기를 원했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가고 돌아갑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소위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경험합니다. 삶의 성취나 건강의 여부와 관계없이 정도는 다르지만 각각의 거칠고 높은 언덕길이나 평탄하고 넓은 대로의 여정을 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은 적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생산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이 대단히 멀리 있거나 위대한 사람들의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수련회에서 나에게 평안과 안식의 좋은 메시지를 준 토니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성경을 가르치고 전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이 타락과 고난의 역사 가운데 잊고 살았던 율법을 다시 발견하고 회복되고자 하는 열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들의 의를 인정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12:1)고 당부하셨습니다.

 

왜 그들의 열정은 메시지가 되지 못하고 외식이 되고 말았을까요? 왜 그들의 삶은 존경과 닮아가야 할 대상이 아닌 주의와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그들의 삶에는 율법은 있으되 희생과 헌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가슴에, 이마와 옷에 빼곡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손과 발을 움직이고 그들의 집과 곡간의 문을 열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교만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정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전해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로 살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 메시지를 자신들의 삶에 기록하고 그들이 경멸했던 이웃들을 위한 벤치가 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희생없는 메시지는 없습니다. 헌신하지 않는 가르침은 공허합니다. 복음은 십자가 위에 기록되는 것이고,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 던지는 구원의 복음은 세상을 위한 헌신 위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는 복음은 공허한 누룩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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