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의 기다림’ | 김나래 | 2023-11-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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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의 기다림’
최근에 인상적인 영화를 하나 봤습니다. ‘3000년의 기다림’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A.S. 바이어트’라는 영국의 소설가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지니’가 아니라 터키 문화권에서 비슷한 개념으로 소개되는 ‘Djinn'이라는 존재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램프의 정령입니다. 한 때 그 정령은 성경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사랑하게 되고 더 이상 자신에게 소원을 빌지 않게 됩니다. 솔로몬이 시바 여왕의 모든 욕망과 소원을 만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시바 여왕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소원을 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Djinn을 호리병에 가두고는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누군가 그 호리병을 건져주지 않으면 영원히 깊은 바다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Djinn은 솔로몬의 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3000년 동안 깊은 바다 호리병에 갇혀 있었습니다.
서사학자 알리티아는 학술회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를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학술회에서 신화와 과학의 연관성과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신화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사람이 만드는 신화는 대부분 한 사회가 공통으로 품었던 욕망 혹은 소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 혹은 반신(半神)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능력과 지혜, 혹은 그들의 영광과 쾌락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소원이자 욕망이었습니다. 알리시아는 우리들 모두는 여전히 신화의 시대에 살고 있고 욕망과 소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강의를 마치고 터키의 전통 시장에 들렀던 알리시아는 그곳에서 문제의 그 호리병을 구입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을 연구하는 알리시아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Djinn이 나누는 지난 3000년의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이면서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알리시아를 만난 Djinn은 그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빌라고 말합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알리시아는 자신에게는 소원이 없다고 말합니다. 소원을 빌기 시작하는 순간 Djinn는 그녀의 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Djinn은 발버둥칩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당신의 마음에 소원과 욕망이 있어야 우리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신화의 존재의 이유이면서 운명이기도 합니다. Djinn이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당신이 소원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보이지도 않은 채 세상 사이에 영원히 남겨지게 돼... 소원을 빌어, 알리시아, 당신 마음 속의 욕망을 빌어봐!”
이 영화가 재미있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 영화는 과학과 신화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지만 신화와 신앙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신화의 본질은 Djinn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욕망과 소원을 재료로 하고 있습니다. 소원이 있어야 신화가 생깁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인류는 더 크고 강하고 높이 올라가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이 신화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민간신앙이라 부릅니다. 민간의 신앙이 발전하여 고등종교가 된다한들 우상을 섬기는 신앙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주려고 합니다. 고민의 주체가 사람이며 문제의 해결의 주체 또한 결국 사람입니다. 그것이 소원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해탈이건 소원의 성취이건 결국 인간의 소원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욕망과 소원이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가 핵심이면서 구원의 계획과 섭리가 그 핵심 가치를 이루는 과정이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은 우리의 소원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의 열매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그의 부탁의 핵심은 ‘경계를 받으라!’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의 경계’를 잘 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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