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걸음까지’(As far as my feet will carry me) | 김나래 | 2023-12-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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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까지’(As far as my feet will carry me)
세계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군의 정비장교로 복무하던 포렐은 소련군이 남긴 탱크를 고치는 일을 하기 위해 소련으로 넘어갑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온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패망하고 말았고, 그는 전범으로 분류되어 25년의 강제노역형을 당하게 됩니다. 나치로 불리던 독일군 포로들은 인권이나 자비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수용소로 가는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살아남은 포로들은 시베리아 끝에 있는 데즈네프 수용소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 수용소는 담장이나 감시탑이 없었습니다. 주변 모두가 얼어붙은 허허벌판이어서 살아서 탈출하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포로들은 그곳에서 석탄을 채굴하면서 천천히 죽어가기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납니다. 포렐은 빛이 바랜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절망을 이기고 있었고, 독일에 있는 가족들은 그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포렐은 그곳에서 기계정비사로 그럭저럭 견딜만한 삶을 삽니다. 하지만 그는 탈출을 결심하고 의사로 일하던 또 다른 포로의 도움을 받아서 탈출에 감행합니다. 북극을 걸어서 넘어가는 길고 어려운 여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극한의 자연환경을 경험하기도 하고 악한 사람들, 선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걷고 또 걸어서 중앙아시아의 작은 마을에 도달했을 때 한 종교사원에 몸을 숨깁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 사제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기꺼이 포렐을 도와줍니다. 알고 보니 그 사원은 유대교의 회당이었고, 사제는 랍비였습니다. 포렐은 왜 나치의 장교였던 나를 돕는지 묻습니다. 랍비는 당신도 그 때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일을 했을 것이고, 나도 지금 내가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말씀을 따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12월 24일 성탄절 전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10년만에 지킵니다. 3년의 포로수용소 생활과 7년의 걷고 또 걸었던 길이 11,491km였습니다. 눈과 얼음으로 덮힌 길이었고, 야생동물과 소련의 군대와 경찰의 눈을 피해야 하는 길이었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지 나쁜 사람들인지를 알 수 없이 그저 자비와 긍휼을 구걸할 수 밖에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존인물인 ‘코넬리우스 로스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제목은 ‘마지막 한 걸음까지’(As far as my feet will carry me)입니다. 그의 이아기는 책으로 먼저 출판되었고,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며 그가 죽고 난 다음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11,491km 라면 얼마나 되는 거리일까요? 미국에서 사용하는 마일로 계산하면 7140마일입니다. 여러분, 필라델피아와 LA는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3800km에 2700마일입니다. 실존인물인 코넬리우스 로스트는 필라델피아와 LA를 왕복 한 번에 편도 한번을 걸어서 했던 것이고, 그것도 극한의 추위와 위험과 공포를 온 몸으로 이기며 걸었습니다. 단순히 생존의 욕구였을까요? 생존 차체가 목표였다면 아마도 그 가능성은 포로수용소에 남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약속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딸과의 약속은 성탄절 전까지 돌아온다는 것이었고, 그는 3년의 포로 생활과 7년의 여정을 지나서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넘어서야 했던 먼 거리입니다. 그 거리 안에 존재했던 수많은 위협과 두려움입니다. 그 거리는 시베리아와 독일의 거리이면서 그가 넘어서야 했던 절망의 깊이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만났던 실존했던 위협보다 더 큰 적은 그와 함께 수용소에 있던 수많은 포로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절망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그 절망의 수렁과 두려움의 장벽을 넘어서서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약속을 지켜낸 사람이었고, 그의 의지와 결단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의 끝을 넘어서고 사람이 측량할 수 있는 거리의 끝을 넘어서서 오직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 한 분이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셨으나 배반당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셨으나 외면당하셨으며, 우리를 부르셨으나 응답받지 못하신 분이셨습니다. 그가 시간의 장벽을 넘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너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의 사랑의 능력이 우리를 회복시키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예수’라고 이름하셨고, 우리는 그를 우리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이 성탄절에 측량할 수 없는 거리와 시간을 넘어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묵상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한 걸음까지’ 우리를 위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그의 사랑으로 변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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