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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신춤왕’의 기억 김나래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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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신춤왕’의 기억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 한편을 봤습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의 성장기를 표현한 드라마여서 옛추억을 생각하며 즐겁게 봤습니다.  ‘소년시대’라는 드라마입니다.  ‘임시완’이라는 꽤 똑똑한 가수 겸 배우가 주인공 ‘장병태’ 역을 맡았습니다.  드라마는 병태가 부여에 있는 한 농업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시작됩니다.  병태의 아버지는 불법으로 사교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병태는 전학가기 전 학교에서도 힘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찌질이’였습니다.  학교 일진들에게 맞고 심부름하고 돈을 빼앗겼습니다.  친구들에게 맞고 들어올 때마다 병태는 아버지를 울면서 원망했습니다.  “이 머리, 이 몸, 이 성격.... 다 아버지한테서 온 거여유!”  그런데 유일하게 병태가 잘하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춤선생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춤’이었습니다.  부여에서 제일 예쁘다는 선화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는 이 능력을 사용합니다.  요즘 유투브에서는 병태가 춤추는 장면이 ‘짤’로 돌면서 임시완을 ‘춤신춤왕’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춤을 잘추는 것으로 병태의 인생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병태는 곧 다시 맞고 돈 뺏기고 심부름하는 찌질이로 돌아갑니다.  선화에게서도 버림을 받습니다.  나는 결국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고 절망합니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병태의 청춘에게도 희망이 찾아올까요?  그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허락될까요?

 

제가 6학년, 아버지께서 부산 연산동에 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저와 같은 나이의 ‘영철’(가명)이라는 친구가 교회에 나왔습니다.  당시 교회가 있던 바로 옆 건물에 살고 있었습니다.  영철이의 아버지는 좀 특별했습니다.  목을 덮도록 머리는 길었고, 하늘하늘 날리는 비단 남방을 입었고, 단추는 늘 위로부터 2개 정도가 풀려있었습니다.  하얗거나 까만 구두를 신었는데 항상 반짝였고, 검은 통바지를 입었습니다.  영철이의 집은 건물 지하에 있었고, 다방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영철이의 집에 간 일이 있습니다.  분명히 다방 간판을 붙였는데 한쪽을 다방으로, 다른 한쪽을 막아놓고 춤 교습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영철이의 아버지가 여러 사람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영철이의 아버지는 ‘춤선생’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맞춰서 멋들어지게 추는 춤을 감탄하며 입을 벌리고 구경했습니다.

 

영철이와 저는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이었습니다.  장기자랑을 하는데 별로 숫기가 없던 영철이가 무대로 나왔습니다.  ‘저 녀석이 왜...?’라는 의문을 잠시 품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 의문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날 그 무대에서 영철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완전 ‘춤신춤왕’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영철이는 TV에서 가수들이 춤을 추면 그냥 따라서 출 수 있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배우거나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춤을 보면 따라할 수 있는 신체능력이 아버지로부터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영철이의 가정환경은 꽤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춤을 가르쳤고,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영철이의 형제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았고, 결국 중3때 전학을 갔습니다.  이후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후 허름한 다방 간판을 보면 영철이가 생각났었습니다.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나서 제가 유학을 왔다가 잠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였습니다.  제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손님이 와 있었습니다.  영철이와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영철이는 부산의 한 가까운 교회에서 부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었고, 결혼을 했고, 두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놀라고 기뻤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영철이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경남의 한 도시로 이사를 간 후 여전히 힘들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던 중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옆집에 있었던 교회에 출석했던 일이 생각났고, 가까운 교회에 출석을 시작하면서 영철이의 삶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했습니다.  변화된 삶의 결과는 신학교와 목사 안수로 이어졌고, 같은 교회에서 유치원을 하는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꾸렸다고 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눈물을 흘리면서 기뻐하셨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중에 내가 원하지 않아도 허락되는 환경들을 만납니다.  부모일 수 있고, 신체 조건일 수 있고, 성별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 그것들이 우리들에게 한계를 주기고 하고, 고통이 되기도, 자랑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는 질문을 느끼고 대답을 준비하면서 인생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주어지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만들어가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2024년을 시작합니다.  환경이 허락하는 삶은 자연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개척하고 도전하는 삶은 성도와 교회의 삶입니다.  주어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닌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고 개척하며 도전하는 초대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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