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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기억’ 김나래 20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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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기억’

 

몇 년 전 늦은 가을에 남장로님 댁 앞을 지나다가 앞 마당 감나무 가지 끝에 여전히 감이 띄엄띄엄 매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장로님께 물었습니다.

 

“장로님, 아직 감을 다 따지 않으셨네요?”

 

남장로님이 선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새들도 먹어야 하고, 지나가는 이웃들도 예쁘게 감이 열린 것을 보고 즐겨야 하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어릴 적 외가를 방문하면 집집마다 유실수가 한 그루 정도는 있었고, 가을이 지나도 가지 끝에 아직 매달린 과실들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과실들을 ‘까치밥’이라 부르셨습니다.

 

까치밥의 정신이 아주 잘 설명된 한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 명필로 남아 있는 추사(秋史) 김정희는 누명을 쓰고 한 때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합니다.  그는 제자였던 ‘남병길’을 많이 아꼈는데 그에게 '유재'(留齋)라는 호를 주고 현판을 써서 선물합니다.  '유재'(留齋)라는 말의 뜻은 ‘남김을 두는 집’입니다.  그는 자신이 제자에게 주는 호를 소재로 삼아 이렇게 시를 썼습니다.  

 

'유재'(留齋) / 남김을 두는 집.

 

다 쓰지 않은 기교를 남겨서 조물주에게 돌려주고,(留不盡之巧, 以還造化)

다 쓰지 않은 녹을 남겨서 나라에 돌려주고,(留不盡之祿, 以還朝廷)

다 쓰지 않은 재물을 남겨서 백성에게 돌려주고(留不盡之財, 以還百姓)

다 쓰지 않은 복을 남겨서 자손에게 돌려주라.(留不盡之福, 以還子孫)

 

‘까치밥’이나 '유재'(留齋)를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들의 생각은 ‘자발적 남김과 나눔’에 대한 성경적인 사고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을 준비할 때 ‘까치밥’에 대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가고 농사하여 추수를 할 때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등의 사회적 약자들과 야생동물들을 위해서 곡물의 일부를 들판에 남겨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소외되기 쉬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23:22)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많이 추수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기고 이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입성 이후 사사기의 시대에 그들은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욕망이 인도하는대로 살았고 하나님의 명령은 잊혀졌습니다.  구약의 역사에서 룻기가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룻기는 모두가 소견과 욕망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신 이 명령을 지켰던 소수의 이스라엘 백성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 보아스가 있었고, 룻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던 모압여인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이 잊혀진 어두운 시대에 언약의 소중함을 알고 지키고자 애쓰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으셨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사람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성경의 한 장면입니다.

 

할아버지가 일러주신 까치밥의 이야기, 남장로님이 보여주신 넉넉한 마음, 추사 김정희가 제자에게 당부했던 '유재'(留齋)의 삶,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남김’의 원리가 우리의 삶의 상식이 되고 습관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서로에게 복이 되고 쉼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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