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 김나래 | 2024-06-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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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한국 드라마가 있었지요? 이 말은 프랑스의 양치기들이 사용하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의 시간을 말합니다. 들판에 풀어놓은 양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양치기들의 호루라기 소리를 따라 저 언덕 너머에서 양들과 함께 다가오는 실루엣이 있습니다. 그런데 헛갈립니다.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그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야생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내 양을 보호하고 오는 것인지, 내 양을 해치기 위해 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양치기들은 그 시간대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이 말은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기 힘들고, 바른 정보와 거짓 정보를 판단하기 힘들고,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가 섞여 있는 것 같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의 색깔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한국 사회가 꼭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주간에 한국의 모든 뉴스 매체에서 대서특필한 이슈가 있습니다. 경북 영일만에서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천연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한국 대통령이 취임한지 2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국정브리핑을 하면서 직접 제공한 뉴스입니다. 석유 혹은 천연가스가 있을 가능성이 20%이고... 그래서 100%로 만들기 위해서 5개 이상을 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유전에 대해 보고한 Act Geo라는 회사가 재미있습니다. 이 회사는 자기 집에서 일을 하는 1인 기업입니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 유전을 발견하는 일에 참여하기보다 유전에 대한 교육을 해왔으며, 영일만 유전에 대한 용역을 받기 전까지는 1년 매출이 3만불이 안되는 회사였고, 한국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은 지난 해 비로소 50억불의 매출이 있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 회사는 한국 정부와 계약을 맺었던 2023년 2월, 회사가 소재하고 있는 텍사스주로부터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다는 사실이 〈시사IN〉이라는 한 언론사의 취재 결과 확인되었습다. 영업세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주 영업세를 납부하지 않아 ‘자격 박탈’ 행정 처분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즉 한 나라의 정부가 허가받지 않은 다른 나라의 1인 회사와 장차 조 단위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정부 측에서는 규모는 작아도 세계적인 권위와 실력을 가진 회사라고 주장하지만 .... 연 매출 23조원에 4500명이 일하는 세계적인 유전개발업체인 ‘우드사이드’는 한국 석유공사와 협력하여 이 지역을 15년간 탐사했고, 결국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고 2023년초부터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나온 같은 검사 결과를 놓고 대표적인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보다 4배가 많은 매장량이 있다는 1인 기업과 지난 15년의 탐사의 결과로 전혀 가망이 없다는 세계적인 석유탐사 기업의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가 나오면 좋은 것이지 왜 딴지를 거느냐는 주장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왜 이렇게 허술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느냐는 불신이 서로 뒤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아니 스스로를 개라고 생각하는 늑대들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난 주간, Act Geo라는 회사가 법인 자격이 박탈되었고, 1인회사이며, 우드사이드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석유발굴의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저를 ‘빨갱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빨갱이’라는 말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누군가를 ‘빨갱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그의 인격과 권리를 묵살해도 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가두고 죽였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했고, 손을 들어서 말하기 시작하면 빨갱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건강한 생각을 품었던 청년들이 거절당하고 희생당했으며 한국 사회에 대해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땅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것을 반대하거나 싫어야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현재의 한국 정부가 이러한 정보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과정과 방법이 건강하지 않고, 왜곡되었으며, 수많은 논리적 허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해질 녘,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저 언덕 너머 내게로 다가오는 존재가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되지 않습니다. 늑대인지를 의심하지 않으면 양을 지킬 수 없고, 확인하지 않으면 어느새 늑대가 양들의 주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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