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 김나래 | 2024-06-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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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마가복음 14장 12-31절에는 베드로가 기억하는 최후의 만찬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아서 만찬을 나누시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앞을 다투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막 14:19)
그들은 왜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는 스승에게 분노하지 않았을까요? 왜 근심하기까지 했을까요? 그 이유는 만찬 이후의 장면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만찬을 마치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곧 잡히게 되고, 모든 제자들이 흩어져 도망갈 것이라 말씀합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갈지라도 나는 결코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30절에서 베드로에게 유명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목숨을 겁니다.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말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같은 말과 같은 맹세를 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볼 때 결국 베드로와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의 날에 “나는 아니지요?”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한 것과도 같습니다. 왜 그들은 스승이 자신들을 믿지 않고 거듭 배반에 대한 예언을 할 때 분노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왜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회피하려고만 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이미 패배와 배반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있는 베드로도, 베드로에 지지 않으려고 우리도 그렇다고 외치는 제자들도 모두 스스로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배반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끄럽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담담히 그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할 것을 말씀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들의 배반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니지요...라는 말은 내가 당신의 십자가의 이유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질문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는 이유가 이렇게 연약하고 거짓되며 어리석고 부족한 바로 너와 너와 너를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그는 바다 건너서 먼 곳으로 도망을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 풍랑을 일으키셨습니다. 요나와 함께 배를 탔던 모든 사람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짐을 버리고 제사를 드리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파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요나의 믿음은 바로 이 순간에 역사합니다. 그는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 앞에 나섰습니다. 이 풍랑이 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바다에 임했고, 우리가 함께 죽게 되었으므로 나를 바다에 던지면 당신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요나서를 예수님을 예표하는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장면이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까? 물고기 뱃 속에서 3일동안 있다가 육지로 나오는 일 말입니까? 물론 그 장면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서의 가치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책임지려는 선택에 있습니다. 요나는 “나는 아니지요.”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 곁에 서서 “바로 나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나 때문에 죄와 악과 거짓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나 때문에 니느웨는 멸망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단 한 사람입니다. 요나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은 책임과 헌신에 있습니다. 세상의 풍랑이 나의 책임이며, 구원을 위해 내가 헌신합니다.
요나는 많은 논란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선택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한 시대를 감당하는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했다는 것이고, 끝까지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이유까지 분명한 논점을 가지고 하나님과 소통했던 요나는 이스라엘의 가장 어두운 시대를 책임지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이며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선언하는 요나의 믿음과 담대함을 칭찬합니다. 우리 시대 요나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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