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능력 | 운영자 | 2025-03-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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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기독교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다. 한 친구와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친구가 찬란한 로마의 거리를 걸으면서 아퀴나스에게 자랑스럽게 말을 건넸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은과 금은 우리에게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퀴나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절름발이에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네.” 아퀴나스의 친구는 중세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힘이 자랑스럽고 그 일원이 되어 힘입을 수 있는 권력이 좋았던 것 같지만, 아퀴나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잃어 버린 현실과 그 이유를 날카롭게 꿰뚫어 본 것 같다. 작금의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아닐까? 더 이상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 큰 압력과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얼마든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소리 높여 선포해야 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믿고 일어나 구원을 받으라!’고 말은 조롱을 받는 것 같다. 과거와는 달리, 복음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사실, 교계나 부족함이나 잘잘못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언제나 나 자신부터 먼저 점검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나는 무엇을 자랑스러워 하게 되었는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는가? 무엇을 간구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교회로 변화되기를 소망하는가? 신앙 생활을 하는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바램과 소원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을까?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신다는 사실이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은과 금을 의지하지 않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에 역사해 주실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선포할 때에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것이다. 주여! 경건의 모양이 있게 하시고,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지도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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