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약속 - 13. 모리아 산을 오르며 3 | 이응도 목사 | 2011-09-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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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모리아 산을 오르며 3
금방 왈칵 눈물을 쏟아버릴 것 같은, 잠시 눈을 뜨고 바라본 하늘은 참 맑고도 푸릅니다.
내가 본 하늘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아도 자꾸만 물기로 흐려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두 눈을 감습니다. 하늘이 내 눈에 들어와 강물로 흐릅니다.
고개 숙인 아버지는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하나님만을 의지해서 살아오셨습니다. 때로 아버지가 하나님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을 때 하나님이 오히려 다가오셔서 아버지를 붙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좋은 벗이 되어 평생을 신실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산에서 제물이 준비될 것이라는 말씀, 왜 그렇게 낮고 젖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는지 이상하기도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아버지의 뒤를 따랐습니다.
아버지는 가끔씩 뒤돌아보시며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멈칫 멈칫 무엇인가 말씀하려 했지만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곤 하셨습니다. 나를 제사 드리는 곳으로 데려가시면서 늘 이런 저런 설명을 하며 가르치셨는데 이번 모리아 산으로 오는 길, 그저 내게 나무짐만 지우실 뿐 아무런 설명도 가르침도 없었습니다. 그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의 눈물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지금 나무 제단 위에 누워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 발로 이 산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단을 묶었던 줄로 아버지는 내 몸을 묶었습니다. 하늘에서 푸르게 넘실대던 강물이 아버지의 얼굴에서 내 얼굴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준비하실 것이라는 말씀, 그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 100세를 넘긴 지 오래 되었고 내 나이 이제 근육이 통통 튀는 10대인데 떨리는 손으로 나를 묶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 손 뿌리치고 달려 나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내 이 몸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 양이라는 말씀, 눈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아버지를 보며 거역할 수 없는 믿음으로 이렇게 누웠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저 칼로 어떻게 제물을 준비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온 몸의 살을 찢고 내 온 몸에 흐르던 피로 제단을 적실 것입니다. 햇빛이 번득이는 칼날이 감은 눈꺼풀 위로 어른거립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약속의 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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