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분노 - 4. 시간을 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 이응도 목사 | 2011-09-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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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간을 주시는 이유에 대하여
내게 왜 이런 시간을 주시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했을 때 나는 그들 앞에서 나를 심판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얼굴을 피하려 했고 내 삶에 하나님이 없는 곳을 만들어 그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 이 단순한 진리 앞에 나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내가 죽음을 선언하기를 원했던 니느웨의 저 악한 무리들처럼 나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저 어두운 분노의 바다에 깊이 더 깊이 죽어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내 뜻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자신에 대해 절망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어렴풋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면서도 나는 반역의 발걸음을 한걸음씩 옮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즐거움보다 내 뜻을 따라 거역하는 쾌감이 더 컸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끊임없이 내 안에서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내는, 그래도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생각의 끝에서 은은히 밀려오는 비릿한 죄악의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발걸음 끝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어둠 속에 나를 심판해야 했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나를 살려 놓으셨습니까? 이 어둡고 막막한 물고기의 배 속에서 무엇을 하라고 이렇게 살아 있게 하셨습니까? 정죄해야 할 그 무엇이 더 남이 있습니까? 이 어둠의 끝에 어떤 희망이라도 있습니까? 내가 나를 심판해버리면 끝인 줄로 알았는데, 나를 죽여 버리면 내 인생의 모든 거역을 책임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죄를 내가 지고 죽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 나는 스스로를 바다에 던져도 하나님을 향한 내 반역을 책임 질 수 없는 것입니까?
고민하며 울며 자며 깼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검은 절망 속에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아직 나를 살아 있게 하십니까? 얼마나 더 절망하고 얼마나 더 후회하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더 살아서 처절하게 나를 심판하고 정죄해야 합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무엇이 있습니까?
나는 점점 더 깊이 잠겨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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