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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길 - 3. 떨기 나무 앞에서 이응도 목사 201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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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떨기 나무 앞에서

때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그때를 생각합니다.

허급지급 애굽을 도망쳐 나온 지 40년,

희망을 던져버린 지 오래 되었었지요.

마른 먼지 날리는 광야에는 어지러운 양들의 발자국만 찍혔을 뿐

내가 가야 할 그 어떤 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루씩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떨기 나무 마른 잎들이 서걱이다가

어느 순간 불꽃이 일어 스스로를 태워 버리는 일,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라면 드물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바람에 재가 날리고 검게 탄 밑 둥만 남은 나무들을 보면서

그것이 내 모습인 것 같아 차가운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그저 견디지 못한 나무 하나 스스로를 괴롭히다가

그렇게 자신을 태워버리는 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흉물스럽게 남은 밑 둥에 검은 새들만 잠시 쉬어가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는 내 눈길을 붙드는 푸른 빛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불꽃 속에서 찬란하게 견디고 있는 잎새들을 보았습니다.

불꽃 속에서도 타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에게로 다가섰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어떠한 고난도 태울 수 없는 싱싱한 열심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40년 동안 수 없이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언제나 계신 하나님,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그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은

때로는 양들의 울음 소리로,

때로는 시원하고 맑은 우물 한 모금으로,

때로는 목자의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으로,

때로는 불타는 떨기나무로 나를 찾으셨습니다.

다만 나는 내 닫힌 마음에 눈을 넣어두고

스스로 하나님을 보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을 뿐입니다.

그날 그렇게 돌아서지 않았다면,

그렇게 돌아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면,

마음 깊은 곳 황량한 절망의 광야에 지친 심령의 눈과 귀를 열지 않았다면

천둥과 번개가 아니라,

산을 우렁거리는 지진이 아니라

불꽃 속에 조용히 숨쉬는 당신의 푸른 의지를 주목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눈을 감습니다.

얇은 바람이 뺨을 스칩니다.

멀리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그 광야에 떨기나무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느낍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구름기둥이 뜨거운 광야를 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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