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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희소성의 원칙 vs 풍성한 은혜 na kim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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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6:24-25절 개역한글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5. 11. 25. Slow Church

 

10. 희소성의 원칙 vs. 풍성한 은혜(6:24-25)

 

희소성 (scarcity) - 인간의 물질적 욕구에 비하여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물적 수단의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를 가리키는 말.

 

유용한 희소재는 경제제라고 하며, 유용하더라도 공기와 같이 거의 무한으로 존재하여 희소성이 없는 것은 자유재라고 한다. 경제원칙이란 이 희소성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주어진 비용조건하에서 최대의 효과를 실현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원리, 또는 일정의 효과를 실현하기 위하여 그 비용을 극소로 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원리를 뜻한다.

 

여기서 경제적 행위란 이 경제원칙에 적합한 행위를 의미한다. 신고전학파의 경제학은 이 경제원칙을 자명의 공리로서 전제하고, 여기에서 도출되는 경제현상 또는 도출되어야 할 경제 상태를 분석하는 것을 하나의 기본 과제로 삼고 있다.

 

제 아내의 음악 선생님이 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의 지휘자이면서 아내 모교의 음악 선생님이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음악을 하고 있었고, 낭만적이고 유쾌한 분이었습니다. 한번은 그 분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간 일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과 즐거운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제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석(水石)이었습니다. 어떤 돌은 비싼 돈을 주고 사기도 하고, 어떤 돌은 휴일마다 전국의 강변을 누비면서 채집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수석을 받쳐주는 나무로 만든 받침대까지 본인이 제작할 정도였습니다. 아예 방 하나를 전부 수석으로 채워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물뿌리개를 가지고 와서 물을 뿌려가면서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돌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나오고, 저 돌에서는 산수화가 펼쳐지고, 여기 이 돌에서는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고.... 정말 다양한 사연들이 돌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제 눈으로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싶은 것들도 있고, 제법 동의가 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수석을 산 가격과 스스로 산정한 가격대였습니다. 어떤 돌은 수 십 만원을 호가하고, 그 중에 어떤 돌은 몇 천 만원을 줘도 안판다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 모든 돌들이 그저 강변에 굴러다니는 돌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군복무를 할 시절에 만났던 동양난에 미쳤던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일이 되면 전국에 있는 모든 산을 누비면서 난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무실에 가보면 자신이 캐거나 선물 받은 난을 꽤 비싸 보이는 화분에 심어놓고 자랑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역시 제게는 그저 좀 폼 나는 풀에 불과했습니다. 가끔 꽃이 피면... 아 좋다...는 생각이 제가 그 난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였습니다. 왜 돌과 풀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될까요? 그것이 가진 고유의 가치 때문일까요? 사람들의 필요 때문일까요?

 

1. 무한 욕망의 시대

 

얼마 전에 한 인기 방송인이 자신의 닉네임을 욕망 아줌마라고 소개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왜 그런 닉네임을 정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좀 더 솔직하게 방송하기 위한 자기소개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욕망스러우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고, 다 경험해 보고 싶고, 다 가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욕망들을 교양 있게 숨기거나 꾸미지 않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 방송인의 말은 오늘 우리 시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개인 혹은 집단의 욕망이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우리 시대 문화의 한 모습입니다. 문제는 전체 인류로서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킬 만큼 풍족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다. 고로 욕망한다.”는 명제가 과연 우리는 욕망한다. 그래서 만족한다.”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욕망에 대한 인간의 슬픈 현실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우리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12:18-19) 채우면 채울수록 더 갈급한 것이 우리의 욕망입니다. 무한 욕망의 시대,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뻥뻥 뚫린 욕망의 항아리에 계속 자신의 인생을 쏟아 붓는 우리 시대에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2. 한 사람, 두 주인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재물이라는 인생의 두 주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주인이 되는 재물은 물신사상, 즉 맘모니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그리고 오늘날까지 인간의 섬기는 우상의 가장 기본적인 얼굴은 바로 맘모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알로 대표되는 고대 근동지방의 우상은 철저하게 기복적이고 물신적이었습니다. 풍요와 다산, 전쟁과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바알의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본성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6장에서 말씀하시는 염려는 맘모니즘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두려움은 그 다른 얼굴이며, 오늘날 경제적인 개념으로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희소성의 원칙입니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천국시민의 삶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시민은 세상의 복과는 다른 복을 추구하며 삽니다.(팔복/5:3-12) 천국 시민은 세상과는 다른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빛과 소금/5:13-16) 천국 시민은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 삽니다.(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5:17-48) 천국 시민은 위선적인 종교가 아닌 본질적 신앙으로 삽니다.(6:1-18) 천국 시민의 기도는 이렇습니다.(주기도문/6:5-15) 천국 시민의 경제 원리는 세상과 다릅니다.(6:19-34) 이후 예수님은 7장에서 천국 시민의 관계적 윤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천국 시민의 경제 원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염려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의 경제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보여주신 증거가 광야의 만나입니다. 그런데 그 원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의 삶에 적합한 만나를 거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일을 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만드는 본능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대상이지 우리의 염려는 가볍게, 혹은 제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3. 재화의 희소성 vs. 은혜의 풍성함

 

구약의 만나의 경제원리가 신약에서 가장 잘 구현된 장면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이적의 현장과 초대교회의 부흥의 현장이었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풍성한 감사와 은혜가 넘쳐나던 현장입니다.

 

희소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꽤 비극적입니다.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얼마나 제한적으로 공급되는가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물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공급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풍족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원하는 가치를 보장 받을 수 있겠지만,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생산하는 자원은 어느 지역에 대해서는 생산 및 공급이 과잉되고, 어느 지역에서는 생산 및 공급이 부족합니다. 과잉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좋을텐데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 경제 체제는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엄청난 양의 자원이 경제논리에 가로막혀 필요한 지역에 전달되지 않습니다. 세계은행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재화의 흐름을 조작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를 원하는 집단의 뇌물 규모만 따져도 1,000조원에 육박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창조세계의 자원은 지어진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기에 충분할까요? , 그렇기도 하고, 아니요,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여전히 세계는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충분하고 풍족하다고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생명이 필요한 모든 것을 지금까지 공급하셨고, 앞으로도 공급하실 것입니다. 씨 하나를 심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30, 60, 100배만은 아닙니다. 작은 씨 하나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풍성한 환경을 만날 때 수천 수만의 또 다른 씨를 품은 열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오늘 허락하신 씨가 내일의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때 그 다음 시대의 풍족하고 감사한 열매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4. 은혜의 원칙으로 사는 삶

 

신약의 두 현장에도 세상의 경제원리가 강조되기도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제자들의 논리와 예수님의 논리가 만납니다. 빌립을 비롯한 제자들은 사람의 수와 자신들이 가진 돈을 계산했습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이 자신 모든 것으로 먼저 헌신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이 가진 것으로 헌신했을 때 예수님은 축복하시고 나누셨습니다. 'Does God Need the Church'라는 책에서 로핑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었다. 그것은 허기를 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배불러 먹고 남을 정도로 초월적인 풍성함이다.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드러나는 것은 신적충만이다. 제자들의 합리적이고 조직적인 문제 해결 방법의 맹점은 그것이 세상을 진짜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p.146) 우리가 창조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통치에서 또한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셨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보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은혜가 실현되지 않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사랑보다 먼저 표현된 것이 제자들의 경제논리였음을 본다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세상의 경제논리가 성도와 교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많은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리를 경험합니다.(4:32-37)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것을 공통체적으로 나누었더니 아무도 소유를 주장하지 않고, 아무도 궁핍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주목하는 두 사람이 바로 바나바와 아나니아였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에 허락하시고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리에 복종하고 실천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은혜를 원했지만 여전히 욕망의 경제원리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성경은 바나바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이후 교회가 선택하는 원리는 아나니아의 것이었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삶의 원리가 은혜의 풍성함을 버린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대로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염려와 두려움의 삶이 아니라 은혜와 만족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소원의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실천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시간을 헌신하고 재정을 헌신하고 감정을 헌신하고 나 자신을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적용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나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는 물신의 논리가 아닌 세상을 지으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풍성함의 원칙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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