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 (신 6:1-3) | na kim | 2015-1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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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8. 한국 학교 교사 헌신 예배 Slow Church 9.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신 6:1-3) 한 때 미주에 있는 한인 교회들에게 경종을 울렸던 문구가 있습니다. 'Silent Exodus'라는 말입니다. 성장한 한인 2세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이민 교회를 빠져나갔던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대학 입학을 전후해 교회를 등한시하기 시작했던 2세들 중 많은 수가 미국교회에 흡수되었습니다. 아시안 2세들이 모이는 교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경우 아예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한인 교회들은 저마다 ‘2세 목회’를 고민하고 내세웠지만 영어 설교자를 제공하는 것 외에 특별한 대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트리니티 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피터 차 교수는 이런 현상을 ‘조용한 탈출’(Silent Exodu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현상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그는 새로운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2010년을 지나면서 한인 2세들이 다시 1세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자녀교육 때문입니다. 2세들이 대학을 진학하면서 좋은 설교와 성숙한 교회 문화를 가진 미국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자신들이 자랐던 1세 교회의 문제점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 결과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습니다. 그리고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을 어느 교회에서 키울까? 어떤 환경에서 키울까?”를 고민합니다. 미국 교회를 출석하면서 자신들이 영적인 만족을 얻는 것도 좋지만, 백인들이 주를 이루는 미국 교회 속에서 육아와 신앙 교육의 원칙이 가진 미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비록 불완전했지만 학교에서 받았던 인종 차별을 느끼지 않는, 보호된 환경에서 웃고 즐겼던 한인 교회에 대한 추억도 살아납니다. 젊고 비판적일 때는 한인 교회의 단점만 생각했지만, 부모가 되고 자녀를 생각하면서 보다 성숙한 시각으로 한인 교회를 바라보게 되고 결국은 다시 한인 교회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도 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 때는 부모님을 무조건 멀리 떠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요즘 2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혹은 함께 살면서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행복을 자녀들에게 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과 같은 교회를 섬기면서 정기적으로 부모님을 만나는 자녀들이 많아지고 있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같은 교회를 섬기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둘 중에 어느 이유이든 한인 교회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면서 또 다른 Exodus가 오기 전에 그들을 위한 좋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1.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한인 교회의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길일까요? 피터 차 교수가 제안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인 교회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2세들에게 어떤 교회를 원하는지를 물었을 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한인 교회의 분열을 부모들을 통해서 경험하면서 자란 세대입니다. 교회가 분열한다는 의미는 함께 예배하던 가정들의 분열을 말하는 것이고, 부모의 선택을 따라 자녀들이 출석하게 되는 교회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많은 2세들이 최소한 한번 이상 교회의 분열을 경험했고, 본인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교회를 옮긴 경험이 있었습니다. 2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는 그런 경험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들이 원하는 교회는 2세와 1세가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한 교회였습니다. 권위주의로 대별되는 그들의 부모세대와의 소통의 어려움을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1세 교역자들과 당회의 권위적인 소통의 방식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었고, 이제 그들이 성인이 되고 교회의 중심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인정하는 합리적인 방식의 소통과 리더십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세대 간 소통의 장벽이 없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피터 차 교수는 한인 교회가 두 가지 초점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세들이 무작정 한인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잘 준비되고 갖춰진 대형교회 중심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 나름의 또래집단 형성이 가능하고 영어로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대형 한인 교회들이 그런 모델을 실험해왔고, 지속적으로 실패해왔습니다. 한인 교회가 집중해야 하는 첫 번째 지점은 우리가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사용하고 서구 문화에 익숙한 2세들에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한인 교회가 미국 사회 속에서 한 번의 토착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한인 교회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또 하나는 우리가 결국은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 적응해서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2세들이 다시 한인교회로의 회귀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입니다. 물론 민족성이 신앙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인 교회가 가진 영적 동력은 민족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2. 자녀 교육, 선교적 관점에서 2세들이 한인 교회로 돌아오는 현상을 분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녀 교육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녀 교육이라는 것이 좋은 대학 혹은 좋은 신앙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민족성과 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지역 사회 선교 전력은 ‘복음적 중립지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이 선교의 기지가 되고,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이웃과 만나는 선교의 지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믿고 복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웃에게는 사랑과 섬김으로 전달됩니다. 복음적 중립지대는 복음으로 무장한 교회와 성도의 섬김이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서게 되고, 그 결과 복음의 씨앗이 그들의 마음에 심겨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신앙을 가진 부모 세대에게 있어서 아직 믿음으로 훈련되지 않았거나 믿음이 없는 자녀의 삶은 선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선교적인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자녀가 복음을 배우고 지키도록 가르칠 책임이 부모 세대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지키게 할 때 ‘복을 얻고... 번성하리라’(신 6: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을 우리는 ‘쉐마’라는 내용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한 이 말씀을 유태인들은 2천 년 동안 가정과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부모들의 세대는 자녀들의 세대에 대해 이렇게 말씀을 지키게 해야 하는 거룩하고 근본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역사를 읽으며 내일을 준비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과거 한국 교회가 경험했던 역사를 통해서 한인 교회의 내일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한국 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을 설명하는 데는 한국보다 먼저 복음이 전해졌던 일본 및 중국과 많은 비교를 하게 됩니다. 조선이 복음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두 나라에 사신사들을 통해서였고, 성경을 번역하게 된 것도 중국어 혹은 일본어 성경을 재번역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의 기독교가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한 반면 두 나라의 교회는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요? 한국 교회에서 복음의 토착화를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네비어스' 정책입니다. 네비어스는 피선교지의 교회가 3가지 원칙을 지켜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첫째는 자급(지원받는 교회가 아닌 독립하는 교회: 선교사의 돈이 아닌 본토인의 돈으로), 둘째는 자전(고용된 전문 전도사가 아닌 자원봉사를 하는 평신도 전도인에 의해), 셋째는 자치(멀리 있는 선교사가 지시·통제하는 것이 아닌 훈련된 현지 본토인 지도자들이 직접민주주의 원칙으로 다스리는)를 통해 피선교지의 성도들이 주체가 되는 토착적인 교회를 설립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한국 교회는 좋은 모델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이 3가지 점에서 성공하여 1907~1910년에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초기 기독교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네비우스 정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역동성이 한국 교회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서구 기독교 국가는 18세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나라들로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선교였고,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적인 정복자들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두 국가는 서양의 제국주의와 함께 다가온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와는 달랐습니다. 한국은 선교국(서양 국가들)과 식민국(일본)이 달랐습니다. 서양의 선교사들은 서구 열강으로서의 자기 나라와의 갈등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을 받은 한국 교회가 기독교인으로서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18-20세기 선교의 역사에서 식민성과 문화제국주의적인 요수가 발생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신앙에 민족성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을미사변 이후 허약해진 고종이 대한제국을 수립하자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충군애국 운동(황제 탄신일 기념식, 조선 건국일 기념식, 애국가 작사 운동, 태극기 게양 운동 등)을 전개해 고종 황제의 권위를 높였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근대 민족국가 형성에 기여하게 됩니다. 1897~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개신교 선교사(아펜젤러, 언더우드 등), 한국인 개신교 지도자(서재필, 윤치호 등), 기독 청년들(배재학당의 이승만, 김소월, 나도향, 주시경, 여운형 등), 지방 유지들(평양의 길선주, 안창호 등)이 참여해 국권과 민권을 고양하였습니다. 성도와 교회의 수가 지금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낮았던 그 시기에 오히려 교회가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자립을 선교 전략으로 선택한 네비어스 정책과 한국 교회의 민족주의 성향이 함께 교회 성장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4. 또 하나의 토착화, 교회와 민족 정체성 이민 교회로서의 한국 교회는 2중적인 토착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한국 교회가 미국 사회 속에서 토착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까지 미주지역에 사는 한인 가정들의 이슈는 자녀들이 얼마나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가에 있었습니다. 미국인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역이민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한인 교회를 떠났던 한인 2세 가정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민 교회가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다시 토착화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이라는 사회 속에 살면서 미국인들과 함께 교회로 모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정확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인이기 때문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고, 동질의 문화와 정서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늘 문화의 옷을 입고 전달됩니다. 한인들에게는 한인들만의 자기 정체성이 건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학교 교사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헌신예배를 드리는 교사들 중에서는 다른 교회를 섬기면서 함께 한국 학교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적어도 1년에 한번 우리가 이렇게 헌신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은 이유는 ‘초대 한국학교’라고 하는 선교적 공간에서 함께 지역사회 자녀들을 섬기면서 협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더욱 좋은 협력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복음으로 잘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허락하신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의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함께 가르치는 일에 협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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