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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자를 양육하다. na kim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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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2:7-12절 개역한글

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 1. 20.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데살로니가 교회

 

4. 제자를 양육하다.(살전 2:7-12)

요즘 한국 교회에 유행하는 전도 전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태신자 삼기일 것입니다. 어떤 개념입니까?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태중에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고 성장시키는 것과 같이 전도의 대상자를 정해서 기도하며 섬기고 전도하고 성숙한 성도로 변화시킨다는 전도전략입니다. 하지만 이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전도의 대상을 정하는 일, 불신자를 성도로 만드는 일도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은 전도자 자신의 삶에 있습니다. 잉태된 아기와 생명으로 연결되어 모든 것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어머니처럼 과연 전도자로 헌신하기를 원하는 우리는 새생명에 대하여 전적인 헌신과 희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전도자로 살고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과 이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신앙이 어렸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렀던 기간은 단 한 달에 불과했고 그 짧은 기간은 그들이 충분히 성숙한 신앙인들로 성장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곳을 떠난 다음에도 자녀를 먼 곳으로 떠나보낸 부모처럼 그들에게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런 사랑과 헌신을 통해 전도자로 살기를 원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7, 9)

 

일반적으로 바울은 매우 원칙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또 다른 지도자였던 베드로가 열정적이면서 감성적인 사람으로 알려진 반면 바울은 직선적이면서 논리적인 사람입니다.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엄격한 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아직 어린 성도와 교회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엄격한 아버지의 사랑은 때로 적절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 포기한 것이 있음을 밝힙니다.

 

그것은 먼저 7절에서 스스로를 유순한 자가 되었다고 표현하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 성품이 결코 유순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강한 정의보다 유순한 사랑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때로 옳고 그름이 너무나 분명한 일에도 그 정의의 판단을 잠시 미루고 자비와 사랑으로 기다리며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정의는 관계를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포기해버린 강한 원칙과 어려움 가운데 선택한 유순한 사랑은 이런 의미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바울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9) 연약한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비량 선교를 선택습니다. 오늘날 선교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자비량 선교의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량 선교가 선교의 우선 순위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일하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조금의 부끄러움이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생각할 것은 바울의 자기 권위 포기입니다. 두 구절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조금도 높이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보다 자신의 권위가 결코 높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보다 낮은 곳에 둘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의 전도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복음의 열매가 없는 사람이라면, 경험한 적이 없다면 과연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준비해야 할 것들(8)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이 준비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전도자,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복음입니다. 하지만 그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복음과 함께 주고자 하는 또 다른 하나를 이해할 때 비로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목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즐겨한다고 말했고 그리고 그 이유를 교회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시대와 사회에 대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메시지가 그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 혹은 교회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혹은 메시지를 전하는 주체가 대상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가진 각자의 문제들이 메시지의 영적인 흐름을 가로막는 현상은 계속 있어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장벽을 허물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이 전파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미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말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돌아보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또 한가지를 말합니다. 메시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향한 평가와 판단이 아닌, 그들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 사랑으로 그는 자신의 생명도 교회를 위해 아끼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주고자 하는 모든 대상이 그 사랑과 복음에 합당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가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복음 증거와 사랑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복음과 사랑으로 헌신한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현실이어야 합니다. 그 신앙에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랑을 줄 것인가? (7, 11)

 

자녀를 키우는 사랑에는 어떤 사랑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서로 다른 사랑이면서 같습니다. 서로 차이가 있지만 상호 보완적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자들을 양육하는 사랑, 태신자를 양육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7절은 어머니의 사랑을, 11절은 아버지의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7절을 봅시다. 바울은 먼저 자신이 유순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사랑, 이것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같이’(as a nursing mother tenderly cares for her own children/NASB, like a mother caring for her little children/NIV, even as a nurse cherisheth her children/KJV)했다고 말합니다. ‘유모에 해당되는 헬라 원어가 아이만을 키우는 유모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이의 생모를 의미하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성경마다 다양한 번역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이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전도자로서의 바울 자신의 사랑을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듯 인내와 사랑과 희생으로 교회를 섬긴다는 것입니다.

 

11절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버지의 역할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아버지가 가정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것처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가르치고 위로하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사랑의 적절한 조화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필요합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아버지의 합리적인 사랑이 조화되어야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가정이 온전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도 바울과 교회 지도자들의 건강한 사랑 가운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초대 교회도 서로가 나누는 따뜻하고 포용적인 사랑과 말씀에 근거한 권면과 위로와 경계로 든든히 서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10, 12)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전도자의 삶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1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삶의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삶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바울은 자기 확신이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본 바울의 삶은 이런 확신 속에서 복음을 전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확신은

교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랑과 헌신에 대한 자기확신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중요합니다. ‘어떤 말을 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삶이 건강한 성도가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를 삼는 일, 성도를 양육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기희생과 사랑, 헌신과 눈물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좋은 모범이 됩니다. 매일 은혜만을 바라는 자기만족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성한 자녀가 되어 또 다른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자녀가 되기 위해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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