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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도의 면류관 na kim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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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2:13-20절 개역한글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 1. 20.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데살로니가 교회

 

5. 성도의 면류관(살전 2:13-20)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천국’(Heaven)은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개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로 주권과 통치의 개념이 강하고, 천국은 영적이고 시간적인 개념이 강조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같은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을 초월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대한 많은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필요했던 모든 것이 충분하게 만족하게 되는 상태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천국의 아름다운과 영광을 묘사할 때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꾸며진 왕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의 개념은 어떻습니까? 제가 만난 어느 목사님은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서 여러 고을을 다스린다는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나중에 천국에서 고을을 다스릴 훈련을 시킨다고 여봐라!”하는 연습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많은 고을을 다스리고 군림하는 훈련을 지금부터 해야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천국의 면류관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신라의 왕들이 썼다는 황금으로 된 왕관을 떠올렸습니다. 사진으로 보고 또 경주 박물관에서 봤던 그 왕관이 어린 나이에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면류관은 그 정도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우리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그런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자기 안에 있는 소망, 기쁨, 자랑이 되는 면류관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떠나는 마음(17:10)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야손을 비롯한 성도들이 피해를 당하자 그곳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막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기 시작한 어린 성도들을 두고 떠나는 바울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아픔 뿐이었습니다. 그는 베뢰아에서 복음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만 두고 온 성도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들이 사도들에게 받은 말씀을 사람의 말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살전 2:13) 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합니다. 그의 마음과 입에서 끊임없는 감사가 솟아납니다. 걱정하고 염려했는데 복음에는 능력이 있고, 성령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루살렘의 유대 교회가 핍박을 받았던 것과 같은 고난을 받고 있었지만(살전 3:14) 그들은 고난 앞에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 앞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살전 2:14)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비로소 걱정과 염려가 아닌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할 수 있고, 편지를 쓸 수 있었습니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그들의 성장과 성숙을 보면서 신뢰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는 복음으로 낳은 모든 교회를 형제요 자녀와 같이 여겼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여러 교회를 그리워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2:5)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8) 바울은 같은 마음, 같은 표현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잠시 바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을 뿐 바울의 마음은 언제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로막는 사탄(살전 2:18)

 

하지만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 행을 막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이 기록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바울은 자신이 갈 수 없었던 이유를 사탄의 방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탄이 과연 어떻게 막았는지 수많은 추측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로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가 후에는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던, 그의 몸을 쇠약하게 하는 질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데살로니가의 읍장들이 야손에게 내렸던 법적 금지령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는 서로 이해하고 있었을 당시의 일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바울의 말 그대로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서로 교제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질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사탄의 방해에 패배하고 만 것일까요? 바울은 13절에서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로 말미암아 쉬지 않고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는 것을 막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역사하셨고 바울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사탄의 계략은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도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때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는 부정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외적인 핍박일 수 있고, 내부적인 관계의 문제일 수 있고, 환경이나 상황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그 요소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쓰러집니다. 사탄의 전략이 치밀할수록 교회와 성도는 더욱더 복음과 진리에 대한 순전한 열정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복음의 원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가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가? 사탄의 방해인가?

 

때로 우리의 삶 속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곳으로 갈까? 혹은 저 곳을 선택할까..?의 기로에 서기도 합니다. 가까운 어느 목사님은 해외에 있는 한 교회의 청빙을 받았습니다. 기도 끝에 청빙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교회를 방문하고 들뜬 마음을 돌아왔습니다. 이제 곧 그 나라로 이사를 가서 열심히 섬기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공동의회에서 청빙이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크게 낙심한 그 목사님은 도대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고 낙심하며 말했습니다. 왜 가만히 있는 내게 그 교회로 가라하시더니 또 수치스럽게 이곳에 남게 하시는가...?라며 우울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6:6-7에는 바울이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던 여정을 바꾸어서 마게도냐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어떤 일로 그런 것인지 바울도, 우리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바울은 이 일을 성령의 사역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 1:13에서 바울은 조금 다른 어조로 말합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여러 번 로마로 가려 했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사탄의 역사혹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굳이 해석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로마로 가려던 것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 함이요, 가지 못하고 3차 전도 여행 중 지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편지를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사도 바울이 사명을 감당하여 그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장소와 사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받은 사명과 헌신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고난이나 고통은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어떤 이유로 오는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그 때 굳이 우리의 얇은 지식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해석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만 그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가다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합력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바라보지 말고 그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진리를 바라보며 고난의 아픔이 아닌 그 진리의 아름다움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면류관

 

바울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자신에게 준비된 면류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의 소망, 바울의 기쁨, 바울이 자랑하고 싶은 면류관은 바로 교회요 성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말합니다. 왜 교회와 성도가 바울의 면류관이 될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면류관이 지금 우리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 예를 들어 금과 은, 혹은 보석으로 만든 것이나 이 세상에서 소유하기 위해 애쓰던 재물과 같은 것이라면 어떤 사람들은 굳이 천국을 소망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의 영광을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는 것, 우리가 그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그 나라의 현실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땅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떤 지,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것을 통해서 예상해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있을 일들에 대한 성경의 표현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밀이라 말하면서도 때로 오늘 본문과도 같은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은 교회와 성도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복음으로 사람을 섬기며 교회를 섬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갈 최고의 가치가 사람에게 있고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헌신하고 투자해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며 교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져서 이방 교회를 위해 사용했던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며 삶을 변화시켰던 교회와 성도의 면류관을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과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과 영광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으로부터 영광을 얻고 싶습니까?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사람과 교회라는 가치에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후 1:14을 읽읍시다. 이 구절에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 이 자랑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한 교회를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서로의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며 서로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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