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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도적같이 오리라. na kim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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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5:1-11절 개역한글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 3. 9.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데살로니가 교회

 

9. 도적같이 오리라.(살전 5:1-11)

 

도둑을 맞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희 가정은 미국에 온 지 2년쯤 지나던 해 좋지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잠시 아파트에 돌아갔을 때 이것이 우리 집인가 생각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출입문 손잡이는 통째로 부숴져 있었고 침대는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소파와 책상까지 다 뒤졌더군요. 결국 현금 얼마와 가전 제품 몇 개를 들고 갔습니다. 하지만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사실보다 저희 집이 도둑에게 노출되었다는 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경찰이 왔지만 피해액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간단한 조사만 하고 가버렸습니다.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우리 가정은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도둑이라는 것이 언제쯤 올 것이라거나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사정이나 형편을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본인의 목적에 따라 왔다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가버렸습니다. 내 삶에 대해서 내가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비할 수 없으니 사는 그대로가 제 3자의 눈에 다 드러나게 되고, 그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우리 가정의 피해가 결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같이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당장 우리에게 도적같이 다가오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될까요? 물론 도적같다라는 표현이 재림의 도덕적인 성격이나 인격적인 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고, 우리의 준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종말에 대해 고민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성경의 권면을 통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종말과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에 대해 고민해 봅시다.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살전 5:1-2)

 

예수님의 재림을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아마도 재림의 시기와 때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말로 재림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고 의견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졌습니다. 그 일로 교회는 분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들의 궁금증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1절과 2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살전5:1-2) 바울은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오실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사는 모습 이대로 예수님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6-7에는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예수님이 주시는 대답이 나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6-7)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에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못 박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리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여전히 궁금하고 여전히 불안합니다. 예수님은 눅 17:26-30에서도 같은 말씀은 주십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17:26-30)

 

예수님은 재림은 마치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할 것이다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노아의 때, 롯의 때와 같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결국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멸망으로 주님의 재림이 임할 것입니다.

도적같이 임할 것인가?(살전 5:3-5)

 

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도적처럼 임합니다.(3) 하지만 4-5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4-5)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도적처럼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마치 노아와 롯에게 있어서 홍수가 도적같이 임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절 상반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죄의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 안에 있기 때문에 도적과 같이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 가운데 맞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까? 어둠의 자녀들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주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는 준비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까?

 

우리 자신이 빛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있다면,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면 주님의 재림은 더 이상 우리에게 도적같이 파괴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3:19-21과 엡 5:8-9를 통해 우리는 빛의 자녀인지 어둠의 자녀인지를 자신에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3:19-21)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5:8-9)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6-8)

 

우리가 정말 빛의 자녀라면 그 증거는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된 삶으로 나타납니다. 6-8절은 빛의 자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증거들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깨어 있음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셨습니다. 25:13의 열처녀 비류를 통해서 예수님은 성도들이 종말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로서 깨어 있음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25:13) 살전 5:8에서 바울은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깨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말씀을 로마서 13:11-14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1-14)

 

하지만 성경은 말세가 다가올수록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게, 잠들게 만드는 유혹이 점점 많아 질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를 가장 크게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1:34-36에는 이것을 무엇이라 말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21:34-36) 재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날에 성도와 교회의 적은 방탕함술취함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둔감하고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살전 5:9-11)

 

펜실바니아주 피츠버그에 가까운 도시 Johnstown에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존스타운 홍수(Johnstown Flood)로 불리는 사건은 1889531일 사우스포크 댐이 붕괴되어서 발생한 2,200명 이상이 사망한 대참사였습니다.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즈에서 태풍 카타리나로 인해 발생한 홍수와 함께 최악의 홍수로 남아 있습니다.

강물을 막은 댐을 조사한 엔지니어들은 펜실바니아 주의 그 마을에 들어가서 주민들에게 경고했습니다. 즉 마을 위에 있는 저수댐의 안전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엔지니어들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을의 주민들은 어디, 우리가 겁을 먹게 해 보시오라고 하며 웃어 넘겼습니다. 그해 가을 조사 단원들이 다시 와서 점검한 후에 다시 한번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습니다. 이듬해 봄에 조사단원들이 다시 와서 댐을 살펴보고는 참으로 위험하다고 했으나 주민들은 이번에도 그것은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일이 아니요? 우리를 겁나게 하지는 못할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경고가 있은 지 보름이 못되어 1889531일 그 큰 댐이 장마비로 깨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댐의 붕괴로 인하여 그 마을 존스 타운의 주민 중 2200여명이 삽시간에 몰사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의 홍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교회는 마지막 때에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그 복음 밖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9-10절에는 하나님이 우리는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한 마지막 권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11) 사도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피차라는 말은 예수님이 자주 쓰셨던 서로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신앙생활의 공동체성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길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상호 의존적이면서 상호 지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안에 있습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들은 대부분 자신의 구원에 집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울의 마지막 권면의 키워드는 피차라는 단어입니다. 서로 돕고 세워주는 신앙생활, 그것이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들의 삶의 핵심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신앙과 삶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날에 대한 주님의 경고와 권면을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종말에 대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할 것임을 알리는 경고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노아와 같이 구원의 방주를 준비하는 권면이 됩니다. 빛의 자녀로 살면서 어두운 사람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때와 시간으로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도적과 같은 재앙이 아니라 신랑을 맞이하는 기쁨과 축복의 순간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함께 서로를 세워서 기쁨의 날을 준비하는 교회 -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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